인생을 더 아름답게 해주는 고통… 사랑으로 승화시켜 상처의 꽃 피워야

(가톨릭평화신문)
▲ 13번째 시집 「당신을 찾아서」를 펴낸 정호승 시인은 “사랑과 고통의 본질을 이해하는 과정을 시를 통해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용철 사진가 제공



“누군가를 사랑하잖아요. 사랑하면 고통스러워요. 젊은 날에는 ‘사랑하는데 왜 고통스럽나?’ 질문을 품죠. 지금은 ‘사랑하는데 왜 고통스럽나’가 아니라 ‘사랑하니까 고통스러운 거’에요. 젊은 날에는 사랑과 고통을 별개의 개념으로 이해했던 거죠. 그런데 살아보니 사랑과 고통은 동의어에요.”

정호승(프란치스코) 시인이 돌아왔다. 메마르고 건조한 이들의 마음 텃밭에 촉촉한 봄비를 뿌려온 시인. 육체를 위한 밥만 먹고 살 수 없는 시대에 그는 영혼의 비료를 퍼다 날랐다.

신작 시집 「당신을 찾아서」에는 125편의 시가 담겼다. 이 중 100여 편이 미발표 신작시다. 1973년 24살에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13번째 시집을 내는 동안 고희를 맞았다. 그의 시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경외심이 녹아있다. 사랑과 고통의 본질을 이해하는 과정을 시를 통해 담아냈다. 시인의 시선은 세상의 연약한 존재들과 삶의 그늘진 구석에 머문다. 그 공간에서 고통과 슬픔, 사랑과 용서, 화해가 만난다.

“살아갈수록 상처는 별빛처럼 빛나는 것”(부석사 가는 길)이고, 그 상처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은 시가 삶을 성찰하는 거름이 된다고 말한다. 유독 새와 새똥을 묵상한 시가 많다. 시인은 “새똥이 있어야 인간의 길이 아름답다고, 그 길을 걸어가야 내가 아름답다”(새똥)고 노래한다.

가톨릭 신앙을 지닌 시인으로서 진리와 절대성을 추구한 면모도 두드러진다. 유다의 역할과 존재성을 탐구한 시 3편도 실었다.

“내 어찌 그토록 너를 닮았느냐/ 나는 내 아버지의 사랑을 닮은 줄 알았더니/ 내 너를 닮아 배반의 새가 되어/ 내 어찌 진실로 고맙지 아니하랴/ 사랑했던 나를 배반한 이를 용서하고/ 믿었던 너를 배반한 나를 용서하는 것은/ 너의 배반의 위안 때문이 아니겠는냐…”(유다에게)

정 시인은 자신을 유다에 비유했다. “예수님이 유다를 용서한 것처럼 예수님이 항상 용서해주시지 않을까 해요. 그래서 살아갈 힘을 늘 얻는거죠.”

고해소 앞에서 마음보다 신발이 먼저 발길을 돌리는 시(고해소 앞에서)도 있다. 또, 명동성당 지하 고해소를 찾아올 때는 먼저 은행에 들러 당신의 돈을 다 찾아 배고픈 거리에 볍씨 뿌리듯 뿌리고 오라는 ‘고해성사 안내문’도 실었다. 신앙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지만, 신앙을 위한 시는 아니다. 그의 시는 신앙을 품은 문학이다.

“그러나 시는 읽는 사람의 것이지요. 예전에는 제 시집을 사서 들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지만, 이제는 관심이 없습니다. 시는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에서 읽죠. 읽는 사람이 쓴 사람의 것을 읽음으로써 가져가는 겁니다.”

그가 이번 시집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표제시가 된 ‘당신을 찾아서’에 담겼다.

“생드니 성인이 참수당한 자신의 머리를 두 손에 들고 걸어간 고통이 제게 큰 위안을 주었습니다. 파리의 첫 주교인 생드니 성인은 사랑이라는 진리를 지키기 위해 참수를 당했고, 그 과정에 사랑이 존재하죠. 자신의 잘린 머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은 고통이에요. 우리의 삶도 생드니 성인처럼 사랑과 고통의 과정이에요. 고통이 없기를 바라지 말고, 고통을 이해해야 합니다. 고통은 사랑과 생명이에요.”

시를 인터넷으로 소비하는 시대다. 그는 “어떠한 시대이든 인간은 육체를 위한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다”며 “결국 어느 시대든 인간은 영혼의 양식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시인은 영혼의 양식을 시의 그릇에 담아 공급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인에게 언제까지 시를 쓰고 싶으냐고 물으니, “(하느님이) 시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면”이라고 답했다.

“노력하면 살아있는 동안 더 쓸 수 있게 해주시지 않을까요? 아직은 가슴에 시가 조금 남아있어요.”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