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의 고통에도 집필에 매진… “성사의 깊이 체득해 은총 누리세요”

(가톨릭평화신문)
▲ 투병 중에도 신앙생활의 바른 지침을 알려주는 소프트웨어 시리즈를 개정 출간한 정훈 신부가 성사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 정훈 신부가 신자들의 깊은 영성생활을 돕고자 출간해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소프트웨어'' 시리즈.



병마의 고통은 ‘사제의 사명’까지 빼앗아 갈 순 없었다.

매주 신장 투석만 세 번. 극심한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기 어려울 정도로 사투를 벌여온 지도 오래다. 꼿꼿하고 큰 키에, 이따금 보이는 따스한 미소로 부임하는 본당마다 신자들과 아름다운 공동체를 일궈왔던 사제의 풍채는 어느새 전보다 많이 야위었다.

사제생활 30년 동안 오로지 신자들이 ‘성사의 은총’ 속에 참되고 기쁜 신앙생활을 누리길 염원하며, 미사 후에도 강연과 집필로 끊임없이 신자 재교육에 힘써온 정훈(서울대교구) 신부가 병상에서 책을 냈다.

2004년부터 성사의 은총과 더불어 공동체와 기도생활의 깊은 의미를 생생한 우리네 일상과 접목해 알기 쉽게 펼친 ‘소프트웨어’ 시리즈 5권 가운데 「고해성사의 소프트웨어 Ⅰ」, 「신앙 공동체의 소프트웨어」를 재발간한 것이다. 초판 발행 후 지금까지 2만 권 넘게 팔리며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미사의 소프트웨어 Ⅰ」 개정판을 지난해 냈을 때에도 그는 사제관에서 자가 투석 중이었다. 1년여 만에 개정판 두 권을 다시 펴낸 것이다.

4일 인터뷰를 위해 일시 퇴원해 만난 정 신부는 “미사ㆍ고해성사ㆍ신앙 공동체ㆍ일상기도ㆍ하느님 나라를 주제로 펴낸 저의 ‘소프트웨어’ 책들이 생명을 이어가려면 제가 힘을 내야 했다”라며 “바뀐 미사 경본 예식에 맞게 내용을 수정, 보완해 다시 선보이게 됐다”고 전했다.

주변 신자들이 보기에도 ‘무모한 도전’이라며 만류할 만큼 병환 중인 사제에겐 밤낮 교정보는 작업도 큰 무리가 되는 상황. 주변에서도 “완쾌한 뒤에 하라”고 만류했지만, 도리어 역정을 낼 정도로 신념을 갖고 집필에 임했다고 한다. 오로지 교회와 신자를 위하는 사제의 사랑이 펜을 계속 들게 한 힘이었던 것이다.

정 신부는 길게 대화를 잇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신자들을 걱정했다. “많은 신자가 고해성사를 꺼리죠. 그러다 보면 죄를 고백하는 실력도 늘지 않을뿐더러 자기 죄와 싸울 능력도 사라지게 돼요. 예수님의 인격으로 무장하고 예수님처럼 세상 죄악과 싸울 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거짓 고백하는 능력만 느는 게 현실이라 안타까워요.”

정 신부는 우리가 성사의 은총을 제대로 받으려면 성사가 지닌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 적극적인 자세와 영적 감수성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휴지 없는 화장실을 다녀오듯 고해성사에 임하지 말고, 용서의 하느님과 만나 그분께서 주신 은총의 무기를 새롭게 갈고 닦는 통회의 작업으로 고해성사의 신비를 올바로 체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사도 마찬가집니다. 미사는 ‘나를 예수로 만드는 일’이에요. 예수님 덕을 보거나, 예수님 이미테이션(모조품)이 되어 복을 얻는 것이 미사가 아니에요. 내가 예수가 되어 십자가를 지고 살아갈 능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정 신부의 ‘소프트웨어’ 시리즈는 「일상기도의 소프트웨어」, 「하느님나라의 소프트웨어」까지 총 5권이다. 가톨릭교회 ‘최고의 하드웨어’인 미사와 성사의 의미를 제대로 운용할 ‘소프트웨어’를 우리 안에 갖추자는 골자로 주제별 시리즈를 출간해왔다. 고해성사 기피증, 미사 분심증, 신앙 공동체 갈등을 향한 정 신부 특유의 신랄한 문체가 신자들의 삶에 만연된 악습을 돌아보도록 이끈다. 아울러 우리가 왜 성사로 하느님이 주신 ‘은총의 대검’으로 무장하고, 미사 때 나의 살과 피를 어떤 마음으로 봉헌해 제2의 예수님이 될 수 있는지 자세히 풀어주고 있다. 지금까지 4만 권가량 판매될 정도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으며, 미사와 고해성사 책은 일본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정 신부는 이제 신장 이식의 도움 없이는 전처럼 직무를 이어가기 쉽지 않다.

“자본화된 사회 기조에서 신자들이 복음적인 항거를 하도록 더욱 무장하길 소원합니다. 신자들이 예수님을 닮아 정말 은총의 기쁨을 잘 누리며 살면 좋겠어요. 여러 번 두고두고 성사의 깊이를 체득해 머리로만 말고, 몸과 마음을 다해 하느님 믿길 기도합니다.”

정 신부는 지금껏 해왔던 대로 개정판들을 전국 신학생들에게 선물했다. 문의 : 02-762-1194, 기쁜소식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