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가톨릭미술상 본상 수상자 이정지 화백

(가톨릭신문)

“수상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성모 마리아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담은 성화와 같은 보다 ‘직접적인’ 성미술 작업을 했다면 한 번쯤 기대를 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 오랜 시간 추상 작업을 해 왔기 때문에 애초부터 생각을 안 했었죠.”

2월 12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아틀리에에서 만난 제23회 가톨릭미술상 본상 회화 부문 수상자 이정지(루치아·79) 화백은 아직도 수상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4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서울가톨릭미술가협회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매년 전시에 출품해 온 그간의 우직함을 생각하면 이번 수상에 대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화백에게 그림이란 평생토록 ‘수단’이 아닌 ‘목적’이었다.

숙명여중고 재학 시절, 미술반에서 방과 후 특별활동을 하며 재능을 발견한 이 화백은 그저 그림이 좋아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홍익대 미대 회화과에 진학한다.

“저는 야심이 없었어요. 국전 출품에도 별 관심이 없었고 그저 화가가 되겠다는 꿈만 꿨지요. 하지만 마음 속 한구석에 내 작업에 대한 자신감만은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것들에 휩쓸리지 않고, 아무도 몰라줘도 그 속에서 내가 가진 본질을 찾아가려고 오래도록 노력했을 뿐이었지요.”

이 화백은 오래전부터 아방가르드 경향의 작품을 주로 해 온 선구자였다.

1980년대부터 당시로는 드문 강렬한 화풍의 단색조 회화 작업으로 국내외에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파격적인 작품과 달리 이 화백의 일상은 단순하고 정확하다.

그는 새벽 6시에 기상을 해 묵주기도로 일과를 시작한다. 오전에는 작업을 하고, 점심 식사 후에는 주로 화단(畵壇)과 관련한 바깥일을 본다. 한국여류화가협회 고문 등 화단의 원로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에 작업 시간을 한 번 더 가지고 다시 묵주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11시쯤 잠자리에 든다. 이러한 일상을 오랜 시간 지속해 왔다.

꾸준함의 힘으로 이 화백은 많은 대작들을 그려냈다. 가로·세로 2미터 내외의 200호, 300호짜리 작품들도 수두룩하다.

이 화백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모은 작품들이 빛을 못 보고 ‘어두운 작업실 구석에 쌓여 있는 것이 불쌍해’ 2018년 말 성미술전을 마련했다. 기하학적인 구성 외에 기도문이나 성경 말씀을 함께 넣은 참신한 시도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성미술 작가들은 늘 깨어 있고 기도해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요. 그래야 거기서 하느님을 찾고 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나이로 팔십인 이 화백은 지금도 늘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고 있다.

창작이란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작업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

코로나19 때문에 가톨릭미술상 시상식이 연기돼 더더욱 수상이 실감나지 않는다는 이 화백은 3월 10일부터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1990년대 작품을 모은 개인전을 가질 예정이다.


김현정 기자 sophia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