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향기 with CaFF] (60)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

(가톨릭평화신문)
▲ 영화 ‘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 포스터.



친언니를 운전 중에 사고로 잃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바이올렛 마키는 어느 날 자기도 모르게 사고가 났던 그 다리 위 난간에 올라서게 된다. 조깅 중에 우연히 이 장면을 보게 된 동급생 핀치는 다리 위로 올라가 꽤 심각했던 그녀를 재치 있는 설득으로 구해낸다. 핀치는 학교에서 잦은 무단결석과 돌발 행동으로 졸업도 못 할 위기에 처해 있는 문제아였다. 출석 잘하고, 일주일에 한 번 상담받고, B 이상의 성적을 받는 것이 선생님과의 약속이었지만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랬던 그가 바이올렛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어느 날 지리 선생님은 인디애나주의 경이로운 장소 한두 곳을 둘러보고 보고서를 내라는 조별 과제를 내 준다.

핀치는 바이올렛과 한 조가 되고 싶어 과감하게 그녀에게 접근하지만, 아무와도 관계를 맺고 싶지 않고 외출하기도 싫었던 바이올렛은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냐고 핀치에게 되묻는다. “넌 동의하지 않을지라도 네 안에 적어도 천 개의 가능성이 있어”라고 말하는 핀치. 그의 이런 부분은 바이올렛을 서서히 움직인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둘은 한 조가 되어 인디애나주의 숨은 명소들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함께 하는 여행 중에 바이올렛은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했던 언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후회, 슬픔 등을 하나씩 핀치에게 털어놓기 시작한다. 어느 날 함께 돌아오는 길에서 핀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다 타버리기엔 너무 젊어’(Too young to burn)라는 노래를 재미있게 따라 부르는데, 그 의미심장한 가사가 인상적이다. 핀치는 그녀에게 말한다. “너의 어떤 점이 좋은지 알아 울트라 바이올렛? 네겐 모든 색이 다 들어있어. 가장 밝은 밝기로!” 바이올렛은 이처럼 언제나 쑥 들어오는 핀치에게 마음을 열고 둘은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여기서 끝났다면 평범한 해피엔딩이었겠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고질적인 핀치의 무단결석이 시작된 것이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학대당했던 과거와 홀로 고통스럽게 싸워왔던 핀치가 ‘깨어있기’를 위해서 선택한 방법이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문제는 바이올렛보다 핀치가 더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이올렛은 언니의 죽음으로 잠시 어려움을 겪었지만 거기서 벗어나자 누구보다도 건강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늘 즉흥적이고 돌발 상황을 만들어내는 핀치는 건강해 보였지만 사실 어떻게든 어둠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쳐 왔을 뿐이었다. 자기 문제는 혼자서 해결하겠다며 바이올렛의 도움을 뿌리쳤던 핀치는 안타깝게도 극단적인 길을 선택하고 만다.

바이올렛에게 세상은 아직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핀치였기에, 그녀는 그가 가르쳐준 세상의 모습을 간직하고 그 안에서 살려고 노력한다. “나는 살아서 일어날 일은 두렵지 않았지만, 살지 못했을 때 놓치게 될 것들이 두려웠다”며 학우들 앞에서 그간 핀치와 함께했던 과제를 발표하는 그녀는 변해 있었다. 서로 기대면서 살아야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일깨워준 영화 ‘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인간의 본질적 가치인 사랑과 관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해준다. 넷플릭스 2월 28일 개봉

▲ 강언덕 신부(이냐시오영성연구소 상임연구원,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