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 마르크스에게 도전하는 마르크스 추기경의 편지

(가톨릭평화신문)

▲ 마르크스 추기경의 저서 「자본론」의 한국어 번역본이 출간됐다. 그림은 카를 마르크스(왼쪽)와 마르크스 추기경(오른쪽).





마르크스가 마르크스에게 도전적인 편지를 썼다. 전자의 마르크스는 하느님을 섬기는 유신론자로 독일의 전 트리어교구장 라인하르트 마르크스 추기경이다. 2001년 주교가 되기 전, 사회정의와 연대를 실천하는 교수로 파더보른대학교에서 ‘그리스도교 사회론’을 가르쳤다. 후자의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혁명을 주창한 19세기 사상가로, 종교를 극도로 혐오한 무신론자였다.

마르크스 추기경은 자기보다 135년 전 트리어에서 태어난 마르크스에게 어떤 연유로 편지를 썼을까? 마르크스 추기경이 2008년에 쓴 「추기경 마르크스의 자본론(원제: 자본론)」의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다.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주원준(토마스 아퀴나스) 박사가 우리말로 옮겼다. 부제는 ‘공존과 상생을 지향하는 질서자본주의’다.

카를 마르크스가 △사적 소유의 철폐 △부르주아 자본주의의 타도 △국가와 정치의 소멸 같은 근본적 변혁을 주장했다면, 마르크스 추기경은 그리스도교 사회론에 입각해 시장경제 체제를 허물기보다 사회적으로 발전시키려는 목표를 지니고 있다. ‘예수의 마음을 지닌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별명을 가진 이 답게 마르크스 추기경은 카를 마르크스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와 ‘규제가 철폐된 시장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해소하는 근본적인 대안을 탐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추기경은 근본적 대안이 가톨릭 사회교리에 부합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의 지구적 확산에 있음을 거듭 강조한다. 그러나 마르크스 추기경은 무조건적 사회복지 분배 정책에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복지 정책은 인간을 단순히 수동적 수용자로 전락하게 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추기경은 질서자본주의를 통한 △성장과 분배의 균형 △자유와 창의성의 발현 △약자와의 연대 △사회 안전망 확보 △청소년과 가정의 보호를 실현하는 경제 정책의 방법을 제시한다.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이 증대되면서 공동체의 평등과 나눔도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를 지향하는 것이다. 세계적 차원에서 만인을 위해 발전의 기회를, 특히 다음 세대와 가난하고 곤경에 빠져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연대성의 정신으로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훗날 독일 헌법에 적용된 “소유권은 의무를 수반한다”는 유명한 기본 원칙을 주장했던 케델러 신부와 회프너 추기경도 조명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스승이었던 회프너 추기경은 경제의 근본 목적을 ‘개인과 사회 구성원이 인간의 존엄성을 펼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물질적 조건들의 장기적이고 확실한 창조’로 정의한 인물이다.

편지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저와 성이 같으신 마르크스 선생, 오늘날 귀하의 이론을 보존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자뿐 아니라 자본주의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왜냐하면, 귀하가 이미 정치와 경제의 운영 방식은 다르고, 노동자를 해고하듯 시민과 유권자를 해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경고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귀하와 같이 트리어에서 태어난 오스발트 폰 넬브로이닝을 인용하며 귀하께 올리는 편지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분은 20세기 가톨릭 사회학을 대표하는 분이기도 합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마르크스 안에서 큰 적을 발견하지만, 그를 존경함을 증언한다.’”

마산교구장 배기현 주교는 추천사에서 “이 책은 하나의 새로운 자본론을 전개하고 있다”며 “마르크시즘의 전철을 밟지 않으면서, 신들린 지금의 자본주의를 어떻게 멈춰 서게 하고 어떤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지를 살핀다”고 썼다.

4년간 이 책을 번역한 주원준 박사는 “가톨릭 사회교리가 회칙 위주여서 신자들이 공부하기에 답답하고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서 “교회 안팎으로 가톨릭 사회교리를 위한 참고서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추기경 마르크스의 자본론

라인하르트 마르크스 추기경 지음

주원준 옮김 / 눌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