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말씀 따라 추상미술 화업 외길

(가톨릭평화신문)



단색화의 대가이자 독자적인 단색조 화풍으로 반세기 화업을 이어온 이정지(루치아, 79) 화백. 갤러리 1898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마련한 원로작가 초대전에 이 화백이 첫 번째 주자로 나섰다. 12월 2일부터 7일까지 서울 명동 갤러리 1898에서 이 화백이 기도로 그린 성미술 작품들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회는 다시 보는 이 화백의 2018년 전시회이기도 하다. 2018년 갤러리 1898 전시회에 출품했던 작품 등 50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대형작품 3점과 소형작품들도 추가로 제작했다.

이 화백을 12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청남방과 청바지, 검은색 티셔츠와 검은 모자, 거기에 뿔테안경까지. 수줍은 미소로 기자를 맞은 이 화백의 패션은 한두 가지 색상만으로 작가의 모든 의도를 한 화폭에 담아내는 단색화 같았다. 이 화백의 단색화는 묵시적, 비장식적, 그리고 설명이 부연 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 화백은 “2018년 전시를 못 본 사람들을 위한 앙코르 전시회다. 그래서 당시 출품했던 작품들은 거의 다 출품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화백은 전시회 주제를 ‘거룩함과 아름다움’으로 정했다. ‘종교는 이 지상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삶의 최종 목표는 미이다. 여기에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다.’ 그는 “이 문구를 가장 좋아한다”며 “이런 생각으로 성미술 작업에 임하고 있고, 그런 지향을 담아 거룩함과 아름다움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이 화백은 전시회장에서 관람객들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관람객들이 추상 성미술을 제대로 보고 느끼고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추상작품은 형태가 ‘있다. 없다’의 문제이고, 추상은 정신적인 작품”이라며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차이에서 어떻게 추상 성미술을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전하고 싶다”고 했다.

이 화백은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뒷산에 올라가 보이는 모든 것들을 도화지에 담았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는 꼭 둥근 해를 그렸다. 유난히 동그라미 형상을 좋아했던 그였다. 그리고 동그라미 형상을 성미술에 접목하면서 지금은 다른 의미로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이후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추상미술을 가슴에 새겼고, 그때부터 추상미술 외길을 걸어왔다. 환대를 받으며 잘 살 길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길은 가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선택한 추상미술의 길은 힘들고 고독했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길이었기에 묵묵히 걸어가야 했다. 이 화백은 “선택을 내가 했으니까 어떠한 고난도 고통도 외로움도 견뎌야 한다. 그것이 예술”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1990년대 단색화에 문자를 끌어들여 화단을 이끌었고, 성미술 작품에까지 접목했다. 그는 “문자를 통해 추상미술을 이해하고, 이해하면서 그 깊이를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추상은 자유로운 것입니다. 추상 속에서 자유를 못 느끼면 어디서 자유를 느끼나요?”

50년간 추상미술 외길을 걸어온 이 화백은 “돌이켜보면 힘든 적도 많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이 길을 걸어왔다.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다.

도재진 djj1213@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