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대표 서정시인, 외로운 영혼들을 어루만지다

(가톨릭평화신문)




정호승(프란치스코, 70) 시인이 외로운 이들을 위해 갓 지은 밥 한 공기를 내왔다. 깨끗이 씻은 쌀(산문)에 정성껏 물(시)을 부어 지었다. 시가 쓰인 배경이 있는 이야기를 시와 함께 엮은 산문집이다. 지금까지 발표한 1000편이 넘는 시 중에서 60편을 골랐다.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이후 7년 만의 신작 산문집이다. 많은 이들에게 읽힌 시 ‘수선화에게’ 산문의 마지막 문장이 책 제목이 됐다.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입니다. 본질을 가지고 ‘왜’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밥을 안 먹으면 당연히 배가 고프지요. 살아가면서 왜 외로운가를 자꾸 생각하고, 부정하고 원망하면 삶이 더 힘들어집니다. 외로움을 긍정하고 본질로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 책을 통해 외로움을 나누고 싶어요.”

정 시인은 10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내 산 다미아노카페에서 열린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외로움이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며 “저 자신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끼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것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고 말했다.

많은 독자가 애착을 갖고 좋아하는 시는 ‘수선화에게’이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고 썼던 이 시는 수선화를 노래한 시가 아니다.

“인간의 본질적 외로움을 노래한 시입니다. 왜 많은 독자가 이 시를 ‘자신의 시’로 생각하고 사랑할까요? 연약한 꽃대 위에 핀 수선화의 연노란 빛은 인간 외로움의 색채이지요.”

‘수선화에게’는 그의 나이 마흔여덟일 때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가 “외로워 죽겠다”고 한 말이 계기가 됐다. 친구에게 “외로우니까 사람이야”라고 말해 주었는데 그 한 마디가 오랫동안 가슴에서 떠나지 않아 시가 됐다.

1979년 유신정권의 종말을 고하는 10ㆍ26 사태가 일어나기 전 스물아홉에 쓴 ‘서울의 예수’와 명동대성당에 걸려 있는 ‘명동성당’을 쓴 배경도 이야기로 풀어냈다. 정 시인은 유신의 1970년대와 통곡의 1980년대를 살아오면서 ‘서로 밥이 되어 주어라’고 하신 김수환 추기경의 미소만 보면 힘이 솟았다고 썼다.

산문집에는 대학 시절, 조선시대 형벌에 관한 논문을 쓰기 위해 달레 신부가 쓴 「한국천주교회사」를 읽고 가톨릭에 입문한 계기도 소개했다. 함께 수원에서 살고 있던 동화작가 정채봉(프란치스코)씨에게 수원행 전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에 한국천주교회사를 읽고 감동받았다고 하자, 정채봉 작가가 수원 화서본당 교리반에 인도한 것이 세례로 이어졌다. 책에는 이같이 시와 짝을 이루는 산문과 어린 시절의 사진들도 함께 실었다.

“인간은 반드시 자기 나름대로의 영혼의 밥을 챙겨 먹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의 육체적 삶의 속도는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지만 인간의 영혼은 속도와 별개로 존재하지요. 평온과 안정, 편안함과 느림이 인간의 영혼에 공급해주는 양식입니다. 시는 영혼의 양식 중 하나입니다.”

그는 “다들 ‘시가 어렵다, 시가 우리 삶에 어떤 보탬이 되고 무슨 역할을 하느냐’고 하지만 시는 배가 고플 때 먹는 밥과 같다”고 말했다.

올해 ‘일흔의 가을’을 보내고 있는 그는 “지금까지 시가 나를 사랑해줬기 때문에 시인으로 살 수 있었다”며 “모성적 사랑이 바탕이 된 가족의 힘으로 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어머니가 시는 슬플 때 쓰는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러고 보니 슬프지 않을 때 시를 쓴 적이 없다”고도 했다.

“인간은 사랑해도 외롭고 사랑하지 않아도 외롭습니다. 사랑을 받아도 외롭고 사랑을 받지 못해도 외롭습니다. 그것이 인간 존재의 본질입니다.(중략) 그래서 당신이 외로워도 외롭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사랑하기 위하여.”(‘작가의 말’ 중에서)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정호승 시인 지음 / 비채 / 1만 7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