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 우주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랍니다

(가톨릭평화신문)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장명숙 지음 / 김영사

“기력이 쇠해지고, 행동이 굼뜨면 사랑이 고픈 애들 옆에서 동화책 읽어주며 살려고 했는데…. 어쩌다 유튜버가 됐어요. 유튜버가 되는 것은 제 계획이 아니었어요. 책을 낸 것도 일종의 덤이지요. 덤으로 받은 것은 다른 분에게 드려야지요. (인세) 제가 쓸 거 아니니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요. 책 많이 사주세요.”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된 은발의 할머니. ‘진짜 어른, 롤모델, 워너비’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구독자 87만 유튜버.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키며 사는 법을 알려주는 ‘밀라논나’가 인기다. 밀라논나는 밀라노와 이탈리아어로 할머니를 뜻하는 논나를 합쳐서 만든 단어다.

1952년생으로 한국인 최초로 밀라노에 패션 디자인 유학을 떠난 장명숙(안젤라 메리치)씨가 위안과 희망의 언어를 담은 응원가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김영사)를 펴냈다.

그는 18일 유튜브로 열린 비대면 기자간담회에서 “젊은 후배들의 권유로 어쩌다 유튜버가 됐다”면서 “구독과 좋아요, 댓글도 몰랐지만 영상 조회 수가 많아지면서 돈이 들어오고, (그 돈으로) 후원하는 어린이들에게 피자와 치킨을 사주고, 더 좋은 선물을 해 줄 수 있어 기쁘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집 밖을 나갈 때 긴장되고 조심스러워진다”며 “섭외도 너무 많이 들어오고, 70대가 이렇게 바빠질 줄 몰랐다”며 웃었다.

그의 채널은 밀라논나의 패션과 라이프 스타일을 소개한다. 지금까지 올라온 영상은 79개밖에 되지 않지만, 조회 수가 많게는 400만이 넘는다. 영상은 ‘명품은 어떻게 명품이 됐을까?’, ‘할머니 장바구니엔 뭐가 들었나?’, ‘운동화엔 이런 옷’, ‘옷 수선 비법 공개’ 등 패션을 다룬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탈리아의 패션 문화와 음식을 소개하는가 하면, ‘가난한 사람과의 결혼이 고민돼요’, ‘꼰대라고 할까 봐 무서워요’ 등 고민 많은 청춘을 위한 인생 상담도 곁들였다. 구독자들은 영상에 묻어난 완고한 고집스러움보다 유연한 소신으로 빛나는 할머니의 인생 내공에 열광했다. 늙음이 곧 낡음은 아니며, 성공보다 성장을 권유하고, 어떻게 나다운 인생을 살 것인지를 보여줬다.

장씨는 최근 지하철에서 머리에 클립(헤어롤)을 올린 중학생을 만난 일화를 소개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엔 클립을 말고 지하철을 타면 이해가 힘들었죠. 다가가 말을 걸었어요. ‘어머, 너무 예쁜 아가씨가 클립을 말았네. 유행이에요?’ 그러자, 웃으면서 ‘네’ 하는 거예요. 뺀 게 더 예쁠 거 같다고 했더니 금방 풀어주더라고요. 그래서 말했죠. 이게 더 예쁘다고요.(웃음) 그 중학생이랑 친구가 됐어요.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하면서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어요. 그 친구가 내가 청춘을 보낸 시절이 상상이 되겠어요? 이해 못 할 건 없어요. 받아들이는 거지.”

그는 유명 백화점의 디자인 고문으로 페라가모와 막스마라 등 이탈리아의 가장 핫한 브랜드를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등 화려한 패션계에 몸담았지만, 1994년 큰아들의 수술과 1995년 삼풍백화점 참사로 동료를 잃으면서 소외되고 어두운 곳에 있는 어린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의 큰아들은 고3 때 수능을 며칠 앞두고, 뇌출혈로 혼수상태에 빠져 큰 수술을 받았다.

“‘하느님, 도대체 이렇게 줬다 뺏는 게 어딨어요? 처음 주셨던 것처럼, 말짱하게 도로 주세요. 반신불수, 식물인간은 싫어요’ 하며 기도했어요. 처음처럼 살려주시면 어려운 아이들 돕고 살겠다고 기도했는데, 이 얼마나 엉터리 기도예요.”

아들의 수술은 기적적으로 끝났고, 장씨는 아들을 하느님이 처음 주셨던 상태로 돌려받았다. 그는 엉터리 기도를 들어주신 하느님과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 거룩한 열정의 딸 수도회 수녀들과 맺은 인연으로 20년 가까이 그룹홈 아이들을 돌보며 후원금도 보낸다.

그는 인생 사전에서 중요한 네 단어, 자존ㆍ충실ㆍ품위ㆍ책임으로 기둥을 지어 글을 썼다. 10대부터 70대까지 살아온 인생을 써내려갔다. 패션계에서 일하며 받은 화려한 조명, 현모양처라는 이데올로기에 묶여 버거웠던 시절, 여자라서 받은 설움, 동양인이라서 받은 소외감, 일하는 엄마라서 겪은 슬픔도 있었다.

장씨는 “나이가 드니, 게으를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그는 “한국 나이로 칠순인데 집에 물건이 있으면 들고 닦아야 하니 팔도 아프다”면서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프리마켓을 하며 물건도 하나씩 정리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젊은 분들 보면 어떻게 저 많은 걸 해낼까 싶어요. 부럽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요. 힘들지만 긍정적으로 사셨으면 좋겠어요. 햇빛이 있어 행복할 수 있고, 시원한 물 한잔에도 행복할 수 있어요.”

책 수익금 전액은 보육원을 퇴소한 새내기 청소년 등 어려운 환경을 딛고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위해 쓰기로 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장명숙 지음 / 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