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펼쳐지는 다양한 조작의 형태와 인간 존엄성

(가톨릭평화신문)



조작의 윤리

베른하르트 헤링 지음ㆍ박종대 옮김

서강대학교출판부



조작이라는 말은 사전적으로 ‘어떤 일을 사실인 듯 꾸며 만든다’는 뜻이다. 진짜를 본떠 가짜를 만든다는 것인데, 조작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가능할까?

조작의 형태는 유럽 사회에서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19세기 산업 분야에 사용됐으나,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면서 조작의 개념은 다양한 방향과 개념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일상생활에서는 물론, 심리학과 정신병리학, 의료기술을 비롯해 사회의 정치, 경제, 환경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세계적 윤리신학자 베른하르트 헤링(1912∼1998) 신부가 △조작은 어디에서 주로 행해지는지 △조작의 의미와 가치를 구분하는 기준들을 망라한 책이다. 헤링 신부는 특히 생물학, 의학, 심리학, 유전학 분야의 조작에 집중했다. 학습과 교육분야에서의 조작을 비롯해 여론 조작, 경제생활에서의 조작, 조작적 설문조사 등 인간의학과 행동 조절, 인간 유전학에서의 조작에 관한 긴급한 문제를 다뤘다.

헤링 신부는 연구를 통해 궁극적으로 묻는 질문은 ‘인간은 누구이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있다. 인간은 사물이 아닌 인격체라는 것이 조작의 윤리를 다룰 때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조작에 대한 윤리적 판단 기준의 핵심은 인간의 본성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 본성의 기초는 무엇보다도 ‘자연법’을 따르는 것이며, 인간 본성의 핵심인 자유와 양심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안락사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한 치료 역시, 생명에 대한 인위적 조작을 개입시키는 것이다. 헤링 신부는 인간 존엄성의 수호를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적극적인 조작으로 인간 실존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생명윤리학자 이동익(서울대교구 방배4동본당) 신부는 추천의 글에서 “헤링 신부님의 사상에서 볼 수 있는 몇몇 키워드는 ‘자유’, ‘해방’, ‘사랑’, ‘양심’, ‘책임’, ‘존엄성’이라는 단어들”이라고 꼽았다. 그러면서 “곧 인간의 가장 인간다운 모습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소명이며, 인류 공동체는 이를 위해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며 “(그런데) 여기에 수많은 왜곡이 있고, 조작이 있어 그 목표에서 멀어진다면 그 왜곡과 조작에 당당히 맞서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썼다.

역자 박종대(요셉)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1970년대 독일 유학 시절, ‘이 책을 번역해 한국 학계에 소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40년이 흘러가버렸다”고 회고했다. 이어 박 교수는 “헤링 신부는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를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잠재력, 자유, 양심, 사랑, 진리와 사랑 안에서의 공동체를 강조한다”며 “이것들에 대한 참다운 이해의 바탕에는 인간과 예수 그리스도의 밀접한 인격적 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