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무골 성지

신나무골 성지성지와사적지

성지이름 신나무골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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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설명 이선이 엘리사벳의 묘를 품은 영남지방 선교의 요람지
소속교구 대구대교구
주     소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 20
전화번호 (054)974-3217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sinnamugol
[사진/그림]   [자료실]
성지소개
영남지방 선교의 요람지인 신나무골은 박해 시대 교우촌으로 1815년 을해박해 때부터 신자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신나무골은 외지고 깊숙한 산골이면서도 대구를 지척에 둠으로써 많은 선교사가 대구 진출의 전초 기지로 삼았고, 샤스탕 · 다블뤼 · 최양업 · 리델 신부 등이 사목 활동을 했던 곳입니다. 1866년 병인박해로 신나무골의 신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박해가 잦아들면서 다시 모여들었고, 1882년부터는 영남지방 선교에 지대한 역할을 한 로베르(김보록) 신부가 순회 전교를 시작했습니다. 1885년 신나무골에 사제관을 짓고 정착한 로베르 신부는 이듬해 대구 본당을 설립하고 곧이어 대구 읍성 전교에 나섰고, 1898년 계산동에 십자형 한옥 성당을 건립했습니다. 그러나 이 성당이 화재로 소실되자 다시 그 자리에 현 계산동 주교좌성당의 원형이 되는 라틴 십자형의 고딕 성당을 지어 1903년 축성식을 올렸습니다.

대구 교회 첫 본당 터인 신나무골 성지는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을 맞아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이선이 엘리사벳의 묘를 성지 입구로 이장했습니다. 이선이 엘리사벳과 그의 남편 배정모 그리고 세 아이는 1860년 경신박해 때 칠곡을 떠나 잠시 신나무골로 피신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도 포졸들이 들이닥치자 한티로 다시 숨어들었지만 결국 포졸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남편 배정모는 배교했지만 이선이 엘리사벳과 장남 스테파노(배도령)는 “죽어도 성교를 믿겠다.”라며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 그 자리에서 작두날에 목이 잘려 순교했습니다. 배교하고 풀려났던 남편은 뼈저린 아픔 속에 부인과 아들의 시신을 그 자리에 묻었다가, 다시 선산이 있는 칠곡의 안양동으로 부인의 시신만 이장했습니다.

1977년 제1차 신나무골 성역화 사업을 완수하고 이곳에 ‘대구 천주교 요람지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을 맞아 성지를 관할하던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주선으로 순교자 이선이 엘리사벳의 유해를 이장하고, 대구 본당의 첫 본당 터에 로베르 신부의 사제관과 신나무골 학당 등을 2차로 복원했습니다. 2015년 대구대교구로 성지 관리가 이관된 후 기존에 복원했던 건물을 철거하고 3차 성지 개발에 들어가 2019년 5월 새 한옥 성당 봉헌식을 거행했습니다. 새 성당은 로베르 신부가 현 계산 주교좌성당 자리에 지었던 첫 한옥 성당을 재현한 것입니다. 이로써 화재로 소실된 대구대교구의 첫 성당을, 대구의 첫 본당이 시작된 터에 다시 세웠습니다.
요일 시간 기타사항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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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

* 미사시간이 변동될 수 있으니 성지로 전화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위치 안내

교통 안내

<승용차>

* 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 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왜관 IC에서 나와 대구 방향으로 4번 국도를 탑니다. 국도 왼쪽에 SK 주유소와 오른쪽의 현대 주유소를 지나 경부 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해 성지 표지판을 보고 굴다리를 통과하면 됩니다.

* 대구에서 국도를 이용할 경우 : 팔달교를 지나 칠곡에서 왜관 방향 4번 국도를 타고 15분 정도 달리면 오른쪽에 성지 표지판이 있습니다.



<대중교통>

* 기차 : 왜관 역에 내린 후 왜관 남부 주차장에서 대구행 250번 버스를 타고(10분 거리) 신나무골 성지(연화리 피정의 집) 앞에서 하차.

* 버스 :

- 대구 방면에서 : 북부 정류장에서 신동, 왜관 방면 완행버스나 0번 250번 버스를 이용하여 신동을 지나 연화리 신나무골 동네 앞에서 하차.

- 왜관 방면에서 : 왜관 남부 정류장에서 신동, 대구 방면 완행버스나 0번, 250번 버스를 이용하여 연화역을 지나 신나무골 동네 앞에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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