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연중 제15주일 (마르 6,7-13)

(가톨릭평화신문)
▲ 조명연 신부(인천교구 갑곶순교성지 전담)



직장 생활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늘 바쁘게 지냈던 형제님이 계셨습니다. 바쁜 것도 문제지만 왜 이렇게 지출되는 돈이 많은지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었습니다. 일에만 빠져 지내는 자신의 모습에 비참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방송을 보면 다들 즐기며 행복하게 사는 것 같은데 자신만 그렇지 않은 것 같았지요.

큰 맘 먹고 가족과 함께 주말여행을 떠났습니다. 저렴한 여행 상품을 운 좋게 구할 수 있었던 것도 한몫했지요. 힘들었지만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가족들도 무척 기뻐했지요. 가족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형제님은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SNS에 즐거웠던 여행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부정적인 글을 남겼습니다.

‘먹고살기 힘들다면서 여행은 왜 가느냐’, ‘여행 다니면서 살기 힘들단 소리 하지 마’, ‘여행은 무슨 나는 주말에도 일한다’ 등과 같은 댓글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여행에서 찍은 사진 속 모습은 분명히 행복하고 즐겁고 부유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노력한 모습은 왜 보지 못할까요? 바로 자신의 견해로만 바라보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 부정적인 생각들이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게 만들고 이 때문에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아픔과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늘 사랑을 강조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대방이 내 뜻대로만 행동해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에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점을 가르쳐주시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늘 함께 전교여행을 하시던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서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자기들의 힘으로 직접 기쁜 소식을 세상에 알리면서 사랑해야 할 대상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게 하시지요.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마르 6,8-9)

어렵고 힘들어하는 사람들보다도 더 부족한 상태가 되어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주님께서 명령하신 사랑을 전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 명령을 충실히 따른 제자들은 성공적인 전교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마귀들을 쫓아내고 많은 병자를 고칠 수 있었습니다.(마르 6,13 참조)

제1독서에 나오는 북이스라엘에 파견된 아모스 예언자도 사실은 예언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었지요. 그러나 주님의 명령을 받아서 이스라엘에 예언합니다.(아모 7,14-15 참조)

우리 역시 주님으로부터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명령은 자신의 능력이나 위치에 따라 사라지는 것이 아닌 반드시 따라야 하는 명령입니다. 그것도 사람들 위에 서서 모든 풍요함을 누리면서 섬김을 받는 모습이 아닌, 부족함 안에서 섬기는 모습으로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웃을 향한 사랑은 섬김을 받는 모습이 아닌, 섬기는 모습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에페 1,4) 이 주님의 선택을 존중한다면 우리가 이웃을 향해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이제 길거리에 나가서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봅니다. 대신 겸손한 마음과 섬기는 모습으로 사랑을 실천하면서 그들이 그 모습에 주님을 믿을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