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그들에게 임하소서] 4. 선한 사마리아인은 외면하지 않는다

(가톨릭평화신문)

▲ 무료급식소 ‘토마스의 집’에서 35년째 봉사하는 정희일 할머니.





속담에 ‘가난은 임금님도 구제 못 한다’고 했다. 참 좋은 핑계다. 임금님도 못 했으니 사회 불평등과 그로 인한 가난에 그저 손 놓고 지켜볼 수밖에.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경우는 다르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드신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를 만나 고통 겪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루카 10,37) 예수님의 가르침을 묵묵히 실천하는 수많은 ‘사마리아인’은 복음의 빛으로 오늘도 사회 곳곳을 밝히고 있다.



35년째 무료급식소 봉사

무려 35년째 봉사를 이어가는 어르신이 있다. 정희일(안나, 95) 할머니. 백 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서울 사당동에서 매일 버스를 타고 영등포에 있는 무료급식소 토마스의 집을 찾는다. 오전 8시 시작되는 봉사는 식탁을 행주로 닦고 수저 물컵을 놓고 식사가 끝난 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는 것으로 끝난다.

“여기서 밥도 푸고 뭐 다 해봤는데 나이 먹으니까 못하겠어. 토마스의 집 총무가 나이 많으니까 넘어진다고 다른 거 하지 말고 간식만 주라고 그랬어. 요즘은 그래서 그냥 간식 주는 거야.”

안나 할머니는 1986년 당시 영등포본당 주임인 염수정 추기경이 “영등포 역전에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니 불쌍한 그분들 배고프지 않게 밥 좀 해주자”라는 말에 봉사를 시작해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안나 할머니는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한다고 했다. “봉사 오기 전 ‘주님 오늘 가서 내가 봉사할 텐데 힘을 주세요’라고 기도해. 또 집에 가서도 ‘주님 힘을 줘서 잘하고 왔습니다’ 하고 기도하지.”

봉사를 마친 안나 할머니가 다른 봉사자들에게 “내일 봐요” 하고 인사를 건넨다. “언제까지 봉사할 거냐고? 내 팔심 쓸 수 있을 때까지는 할 거야.”



가진 것 나누는 사람들

서울 영등포구의 쪽방촌에 있는 행려인 무ㅈ료진료소 요셉의원에는 나이와 직업이 다양한 후원자들의 나눔의 손길이 끊이질 않는다. 요셉의원 현관문 사이에 현금 5만 원을 밀어넣고 가는 얼굴 없는 후원자도 있고, 결혼 30주년을 맞아 후원금을 들고 오는 부부도 있다. 지난 11월에는 박문실(라우렌시오) 부부가 전국의 성지 111곳을 순례하고 그 기쁨으로 돼지고기 50kg을 후원했다. 지난가을에는 세종과학고 학생들이 직접 만든 천연비누와 치약을 보내왔다. “저희는 평범한 대한민국 청소년입니다. 저희가 만든 치약은 여러분의 건강을 생각하여 천연 재료로만 제작된 것입니다”는 편지와 함께. 가진 게 적다고 나눌 수 없을까, 내가 나눈 콩 한쪽도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수 있다.

기부 문화를 선도하는 기업들

몇 년 전 대형마트의 ‘통큰 치킨’이 유행한 적 있다. 하지만 자본력으로 소상인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통큰 기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박용만(실바노)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 박 회장은 2012년부터 매년 10억 원을 (재)바보의나눔에 기부해왔다. 성금은 다문화 가족, 장애인, 복지재단, 미혼모 등 우리 사회 소외된 이웃을 위해 쓰였다. 박 회장이 회장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도 두산그룹(회장 박정원)의 기부는 계속되고 있다. 박 회장은 2014년 바보의나눔 기부금 전달식에서 “우리 사회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은데 기업이 사회 공헌활동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전했다.

이 밖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기업은 (주)경동제약(회장 류덕희)이다. 경동제약이 2010년부터 바보의나눔에 전달한 성금은 총 16억 3000만 원에 달한다. 류기성(알로이시오) 경동제약 부회장은 지난 7월 바보의나눔을 방문해 “경동제약 직원들 모두 자발적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며 “나눔의 선순환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은행도 2003년부터 매년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은 3000만 원을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에 전달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1월 18일 제2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미사 강론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팔짱을 끼고 있거나 무기력하게 팔을 늘어뜨리고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해주신 것처럼 우리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손을 뻗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을 뻗는 이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전은지 기자





대단한 사람만이 남을 도울 수 있는 건 아니다. 누구나 일상에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온정의 손길로 추위를 녹이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바보의나눔

시간에 쫓긴다면 일단 후원을 적극 추천한다. 가장 대표적인 기부단체는 (재)바보의나눔. 바보의나눔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셨던 김수환 추기경님의 뜻을 나눔으로 이어가고 있다.

문의 : 02-727-2506, (재)바보의나눔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생애첫기부’

이제 막 결혼한 이들이라면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생애첫기부’가 제격이다. 생애첫기부는 소중한 아이의 잔치를 열어주는 대신 질병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친구들을 위해 후원금을 내는 기부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사랑과 나눔의 가치를 일깨우고 함께 사는 이를 떠올려 보게 한다.

문의 : 02-727-2299,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서울카리타스자원봉사센터

시간을 낼 수 있다면 가난한 이들 곁으로 다가가는 것이 좋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가 운영하는 서울카리타스자원봉사센터를 통하면 자신이 도움 주고 싶은 적합한 단체를 찾을 수 있다. 체계적인 자원봉사 교육을 받고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남에게 깊은 도움을 줄 수 있다.

문의 : 02-727-2235, 서울카리타스자원봉사센터



무엇보다 신앙생활을 하는 본당 이웃들에게 시선을 두는 것도 중요하다. 주일마다 스쳐 지나가는 신자들의 표정, 그들의 손과 걸음걸이를 보고 어떻게 사느냐고, 어려운 점은 없느냐고 묻고 손 내미는 것. 사랑의 시작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