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십자가(김미희, 마리스텔라, ‘어머니들의 기도’ 한국지부 부회장)

(가톨릭평화신문)



이탈리아 움브리아에 종일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짊어진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그는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십자가의 무게를 바꾸어 주십사고….

그날 밤 꿈속에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은 그를 창고로 데려가시더니 “들어가서 바꾸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에는 갖가지 크기와 모양의 십자가가 가득했습니다. 그는 적당해 보이는 십자가 하나를 골라 들었습니다. 거기엔 오랜 친구의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는 그냥 놔두었습니다. 마침내 가장 작은 십자가 하나를 찾아낸 그는 주님께 허락을 받고 집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에는 자신의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

작가 파울루 코엘류의 페이스북 ‘10초 읽기’를 번역해봅니다. ‘10초’ 길이라지만 저에게는 지난 30년을 돌아보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저에게도 너무 무겁다고 생각했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27년 함께 살았던 시어머니였습니다. 움브리아 아저씨처럼 저도 주님께 졸랐습니다. 시어머니를 사랑하게 해 주시길, 그렇게 십자가의 무게를 바꾸어주시기를….

당연히 제 고해성사의 단골 주제는 ‘시어머니와의 갈등’이었습니다. 한 신부님은 “함께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화해하고 있는 겁니다”라며 다독여주셨고, 어느 성지의 신부님은 “요즘처럼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며느리가 귀한 시대에 여기 와주어서 고맙습니다. 오늘 주님께 위로를 받고 돌아가시길 빕니다”라고 해주셨습니다.

그런 말씀들에 울컥 눈물을 쏟고 나면 십자가가 잠시 가벼워져 다시 짊어질 용기를 냈습니다. 가까운 주변만 돌아보아도 훨씬 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저는 ‘세상에서 제일 가벼운 십자가’인 줄 모르고 끙끙거리며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하루 세 번, 한 번에 한 시간이 넘게 성모님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시며 큰 소리로 기도하셨습니다. 문밖까지 다 들리는 기도의 90%는 이민 가서 잘 살고 계신 시아주버니를 위한 반복 기도였습니다. 속 좁은 저는 그 기도 분량도 섭섭했습니다. 어쩌면 어머니께는 그 아들이 정말 아픈 손가락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야, 남은 10%라도 남편과 아이들을 위한 어머니요 할머니의 매일 기도가 있었기에 우리 가족이 주님 안에서 평안히 살 수 있었던 ‘고마운 십자가’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가끔은 어머니가 계시던 방 쪽에서 낭랑한 기도 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그럴 때면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어머니 죄송했습니다. 참 감사했습니다.” 주님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제 기도를 들어주셨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