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사회 현실 1cm도 피하고 싶지 않았다”

(가톨릭평화신문)
 
▲ 봉준호 감독이 19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아카데미 4관왕의 영예를 안은 영화 ‘기생충’ 봉준호(미카엘) 감독이 19일 귀국 후 첫 공식행사로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회견장에는 국내외 취재진 500여 명이 몰려 ‘봉하이브(Bonghive, 봉준호 감독의 이름에 벌집이란 뜻을 더한 신조어로 벌떼처럼 번져 나가고 있는 봉 감독의 팬덤을 의미)’의 열기를 실감케 했다. 기자회견에는 배우와 제작진도 함께했다.

봉 감독은 영화 ‘기생충’에 대해 “어떤 목표를 정하고 찍은 영화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평소대로 완성도 있는 영화를 정성스럽게 만들어보자고 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은 무계획”이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봉 감독의 무계획 작전이 아카데미에서 통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봉 감독은 그러면서 “이 스토리가 가진 우스꽝스럽고 코미디적인 면도 있지만, 빈부격차의 현대사회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씁쓸하고 쓰라린 면도 있다. 그 부분을 단 1cm라도 피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 솔직하게 그리려고 했던 게 대중적인 측면에서 위험해 보일 수는 있어도 그게 이 영화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봉 감독은 한국의 영화산업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그는 “한국의 영화산업이 그동안 눈부신 발전이 있었지만 젊은 감독들이 모험적인 시도를 하기에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한국의 영화산업이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말고 더 도전적인 영화들을 껴안아야 한다”면서 “최근에 나오는 여러 훌륭한 독립영화를 보면 워낙 많은 재능이 이곳저곳에서 꽃피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산업과의 좋은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봉 감독은 가톨릭적 가치와 덕목을 많이 강조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 봉 감독이 세계적 거장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 역시 부모의 영향이 컸다. 한국의 1세대 디자이너인 아버지 故 봉상균(안드레아) 교수는 본당 사목회장을 지냈고 종교 미술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성체를 주제로 한 제44차 세계성체대회 포스터, 가시관을 쓴 심장을 그린 경향잡지 표지화 등이 봉상균 교수의 작품이다.

봉 감독의 어머니는 소설가 구보 박태원 딸인 박소영씨다. 이처럼 예술가 집안에서 자란 봉 감독은 주일학교 교지에 그림을 그리며 예술에 대한 꿈을 키웠다.

지난 1999년 데뷔 후 한국 영화산업의 발전을 위해 달려온 봉 감독은 “빨리 다음 작품에 대한 시나리오를 열심히 한 줄 한 줄 써나가는 게 20년간 그래 왔지만 그게 영화산업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고 말했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