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멍난 듯 쏟아져 일터와 집 모두 침수… 앞이 캄캄

(가톨릭평화신문)
 
▲ 경기도 연천군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연천본당 김미자씨의 집이 침수됐다. 김씨의 집 앞마당에 살림살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 한탄강이 범람해 물이 역류하면서 강원 철원 갈말읍 동막리 마을을 덮쳐 신자 3가구 등 마을이 침수됐다. 군 장병들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 안성 죽산면이 폭우로 약 20년 만에 침수 피해를 입었다. 죽산면에서 가게를 하는 안혜란씨 가게도 침수 피해를 입었다. 안씨의 가족들이 물에 젖은 옷들을 정리하고 있다.

 

 

 
▲ 충북 충주 엄정면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허성회씨의 집과 농지가 침수됐다. 허씨는 이번 비로 5000만 원이 넘는 피해를 입었다. 왼쪽 사진은 이번 비로 침수된 허씨의 육묘하우스. (오른쪽 사진) 엄정본당 주임 조창희 신부가 허씨의 집을 방문해 침수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수마가 할퀴고 지나간 자리. 산이 무너지고 도로는 종이처럼 찢겼다. 농경지와 주택이 침수됐고 뿌리째 뽑힌 나무와 암석은 골짜기 곳곳에 뒹굴었다. 기록적인 폭우는 전국 곳곳에 크고 작은 생채기를 남겼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사람들의 삶을 하루아침에 앗아갔다. 폭우로 피해를 당한 경기 안성과 연천, 강원 철원, 충북 충주를 찾았다.



경기 안성… 20년 만에 마을 침수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은 폭우로 약 20년 만에 마을이 물에 잠겼다. 죽산면에서 3년째 옷가게를 하는 안혜란(클라라, 죽산본당)씨는 자신의 가게를 보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2일 새벽 6시부터 많은 비가 내렸고 정오쯤 가게에 나왔는데 무릎 높이까지 물이 차 있었다.

옷들은 모두 흙탕물 범벅이 돼 있었다. 1000만 원에 달하는 손해를 봤다. 억장이 무너졌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 마음을 추슬렀다. 물건 정리는 안씨의 가족이 도왔다. 자원봉사를 신청해도 되지만 부담을 주기 싫어 가족끼리 하기로 했다. 안씨의 가게뿐만 아니라 집도 문제다. 집 앞 도로는 유실됐고 산사태로 집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안씨는 “목숨과도 같은 물건들을 정리할 때는 너무 속상하다”면서도 “정리한 물건은 세탁해서 주변 어려운 사람들과 나눌 생각”이라고 말했다.



경기 연천… 목숨 구한 것만으로 감사

물은 순식간에 김미자(데레사, 연천본당)씨의 집으로 밀려 들어왔다. 물건을 챙길 시간도 없었다. 집 안에 물이 차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어깨까지 물이 차올랐다. 3일 새벽 경기도 연천군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김씨의 집이 물에 잠겼다. 냉장고와 세탁기, 김씨가 운영하는 목공소의 자재들과 장비들이 모두 떠내려갔다. 김씨와 그의 남편은 구조대가 올 때까지 침대 시트를 붙잡고 3시간을 물속에서 떨어야 했다. 김씨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며 “목숨을 구한 것만 해도 감사하다”고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김씨는 집과 목공소가 침수되면서 3000만 원이 넘는 피해를 봤다. 코로나19로 목공소도 타격을 입으면서 간신히 유지만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수해까지 겹쳤다. 목공소와 집을 짓기 위해 빌린 대출금 8000만 원을 어떻게 갚아나가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김씨의 남편은 뇌경색과 신부전증, 시신경 손상 등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한 상태다. 김씨는 “목공소는 평생 해오던 일인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앞이 막막하다”고 했다.



철원 동막리… 40가구 중 절반 침수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동막리도 폭우로 마을이 물에 잠겼다. 동막리 40가구 중 20가구 정도가 침수됐고 이 중에는 신자 가구도 3가구 침수됐다. 동막리 이장 윤여왕(마르코, 갈말본당)씨의 집도 이번 비로 물에 잠겨 큰 피해를 봤다. 윤씨는 “동막리가 큰 피해를 봤다”며 “동막리 아래쪽에 있는 집들은 대부분 침수가 됐다”고 말했다.

동막리가 침수 피해를 입은 것은 폭우로 인근 한탄강이 범람하면서 물이 역류해 마을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5일 오후 1시쯤 물이 올라온 물은 순식간에 마을을 휩쓸었다. 김옥순(아나타시아, 갈말본당)씨는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싶을 정도로 비가 많이 왔다”며 “물이 밀려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1996년과 1999년에 침수가 됐는데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겠지 했는데 올해 또 침수되면서 마음이 안 좋다”고 말했다.



충주 엄정… 논밭 침수로 큰 피해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 사는 허성회(아우구스티노, 엄정본당)씨는 2일 새벽잠에서 깨자마자 급히 아내를 깨웠다. 창고와 주차장으로 쓰던 주택 1층에 물이 차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비로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하천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허씨의 집을 포함한 마을을 덮쳤다. 허씨는 “일어나니까 물바다가 돼 있었다”며 “구조 신고를 한 후 물이 조금 빠지길래 급히 아내의 손을 잡고 나왔다”고 말했다. 허씨의 아내 김태희(가타리나)씨는 “물이 들어오는 것을 보니 정신이 없었다”며 “내가 엄정면 토박이인데 나이 70이 넘도록 이런 건 처음 봤다”고 했다.

수해로 허씨는 5000만 원에 달하는 피해를 봤다. 1층에 주차돼 있던 트럭과 승용차가 침수돼 폐차했고 농작물 건조기와 농기계들도 침수돼 못 쓰게 됐다. 벼농사와 콩농사를 짓는데 논과 밭에도 물이 차면서 피해가 크다.

허씨는 “하늘의 뜻이니까 방법이 없다”며 “이만한 것도 고맙게 생각한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