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14.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행복하다는 뜻은

(가톨릭평화신문)


나는 파리에 갈 때면 항상 전철을 탄다. 프랑스에도 지하철에서 승객들에게 구걸하는 이들이 항상 있다. 이들은 대부분 난민이거나 이주민들이다. 때로 이들은 연주도 한다. 손풍금을 어깨에 메고 곡을 연주할 때면, 깜깜한 터널 속을 달리는 지하철의 삭막함을 없애주기도 한다. 잠깐이나마 승객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것 같아 고맙기도 하다. 그들은 연주 후 무뚝뚝한 표정의 사람들에게 빈 플라스틱 컵을 내민다. 그래도 악기 다루는 재주를 선보이고 그러는 것이니, 그들 입장에선 덜 쑥스럽게 다가가는 것이리라.

어느 날은 키가 자그마한 중년 남성이 전동차 한가운데에 섰다. 그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계속 흰 치아를 드러내고 웃으며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무관심한 승객들 사이에서 직업도 없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데, 유창한 언어 구사와 행동으로 보아 프랑스 사람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얼굴도 반들반들하고, 못 먹어서 까칠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의 태도를 봐서 정신 건강이 조금 정상은 아닌듯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갑자기 홀로 서 있는 나를 보더니, 입이 귀에 걸릴 듯 큰 웃음을 지으며 “아! 마더 데레사 수녀님!” 하고 외치는 것이 아닌가! 모든 승객이 다 들을 정도로 큰 소리로 말하는 바람에 민망함도 들었지만, 수도복을 입은 나를 보자마자 성녀가 불현듯 떠올랐나 보다. 어쨌든 나를 보고서 평생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삶을 바치신 성녀 데레사 수녀님을 떠올렸다면 그것으로 다행이라 여겼다.

내가 베르사유수도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파리 한인성당을 주기적으로 오간 지도 오래됐다. 파리 한인성당은 나를 포함해 이곳 한인들의 큰 안식처다. 파리 한인성당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유학 중이던 신부님과 소수의 유학생, 교민들이 형성한 공동체다. 성당은 1954년 파리대교구로부터 본당으로 공식 인정을 받았다. 한인성당은 그간 공동체 이전 등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66년 넘게 한인들에게 듬직한 나무 같은 존재가 돼오고 있다.

현재 주일이면 신자 250여 명이 미사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내가 한인성당을 찾는 날은 본당 주임 정윤수 신부님과 수녀님, 신자들과 만나는 날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나그네다. 나도 타향살이 중인 나그네다. 그런 와중에 우리가 머나먼 타지의 신앙 공동체 안에서 갖는 만남은 크나큰 기쁨과 반가움이다.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마음으로부터 솟아나는 즐거움과 함께 위로와 용기도 주고받는다.

한인성당은 소박한 2층 건물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교중 미사에 참여하는 동안 주일학교에서 교리를 익히고, 어린이 미사에 참여한다. 교중 미사는 2층 성전에서 봉헌된다. 빽빽하게 놓인 의자가 모자랄 정도로 다 채워진다. 신부님은 강론을 통해 아름답고 힘 있는 말씀으로 타향에서 사는 우리들의 영적 목마름을 채워주신다. 미사 후 아래층에서 열리는 다과 자리는 덤이다. 매번 자매님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해주신다. 우리는 다과 곁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여념이 없다. 이곳은 분명 하느님 안에서의 영혼의 쉼터와 휴식처이다.

내가 사랑스러운 동료 수녀들에게 “나 한인성당 다녀와요” 하고 말하면, 수녀님들은 “이번 주일에 마리스텔라 수녀는 한국에 다녀오네~!” 하면서 반겨주신다. 나의 마음도 덩달아 따뜻해진다.

마더 데레사 성녀께서 우리에게 알려준 복된 말씀들이다. “하느님과 함께 우리가 행복하다는 뜻은 그분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분처럼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분처럼 내어 주는 것입니다. 그분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프랑스 성요한 사도 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