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철 평화칼럼] 당신이 천주교인이오?

(가톨릭평화신문)


1846년 6월, 김대건 신부는 황해도 옹진 순위도에서 프랑스 선교사의 입국로를 개척하다 포졸들에게 체포됐다. 앞서 관가에 끌려간 사공들이 겁을 먹고 입을 여는 바람에 김 신부는 양반 행색이었음에도 체포될 때 머리털이 한 움큼 뽑히고 주먹질을 당했다.

포졸들은 해변에 이르러 김 신부 옷을 벗겨 포승줄로 묶고 조롱하면서 관장 앞으로 끌고 갔다. 많은 사람이 그 광경을 지켜봤다. 해주 감영 관찰사로 추정되는 관장이 김 신부를 내려다보고 물었다. “당신이 천주교인이오?”(김대건 신부의 스무 번째 옥중서한 참조)

이 서한을 읽어 내려가다가 관장의 질문 앞에서 멍하니 멈췄다. 이 짧은 질문이 천근만근 쇳덩이 같은 중압감으로 다가오더니 이내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에 꽂혔다. “당신이 가톨릭 언론인이오?”

오랜 세월 가톨릭 언론인입네 하며 살아왔으나 시대의 징표를 읽는 눈은 예나 지금이나 백태가 낀 것처럼 어둡다. 읽어낸 징표를 복음의 빛으로 해석하는 능력도, 해석한 것을 대중의 언어로 전달하는 재주도 좀체 늘지 않는다. 그뿐이라면 오히려 다행이다. 시대의 요동(搖動)에 멀미가 나는데도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복음의 진리를 외면하고 때로는 게으름을 피웠다.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말과 글은 또 어쩌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에라스무스가 「우신예찬」에서 풍자한 도취와 무지의 젖을 먹고 자라는 ‘바보신’은 필자 같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김 신부는 관장의 질문에 거침없이 “그렇소!”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부끄럽소!”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말이 나온 김에 관장이 환생이라도 해서 서울 도심 광장에 나타나 심문소를 차렸으면 한다. 지난달 중순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여성시민단체들이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낙태죄 전면 폐지를 촉구하는 천주교 신자 기자회견을 열었다. 가톨릭 신자라는 여성들이 “나는 천주교인입니다. 낙태죄 폐지를 찬성합니다”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당당히 언론사 카메라 앞에 섰다. 일부 언론은 ‘진짜’ 신자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세례명까지 달아 그들의 주장을 전했다. 관장이 그들에게 다가가 “당신이 천주교인이오?”라고 물어보았으면 한다.

관장에게 여의도 행차도 부탁하고 싶다. 낙태죄 전면 폐지 법안을 공동 발의한 여성 의원 10명 가운데 4명이 천주교 신자다. 태아의 생명권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중요하기에 형법상 낙태죄를 아예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4월 총선에서 가톨릭 신자 83명이 금배지를 달았다. 전체 국회의원(300명)의 27.7%다. 즉, 의원 4명 가운데 1명은 세례식 날 주례 사제가 붓는 세례수로 죄를 씻고 신앙을 고백한 신앙인이다. 그들의 이마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인호(印號)가 새겨져 있다. 하지만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외치는 신자 의원은 찾아보지 못했다. ‘정치 따로, 신앙 따로’ 행태를 보이는 그들에게 실망을 금치 못한다.

“주님, 당신께서는 의로우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오늘 이처럼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다니 9,7) 예언자 다니엘의 고백은 우리 모두의 것이 돼야 한다. 부끄러운 행태를 부끄러워할 줄 알면 구원의 문은 닫히지 않는다.

한국 주교회의가 대림 제1주일인 11월 29일부터 1년간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으로 선포했다. 희년 주제가 174년 전 관장이 던진 질문, “당신이 천주교인이오?”다. 우리 각자 희년을 살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