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대 미 대통령 바이든 취임, 성경에 손 얹고 통합과 치유의 정치 다짐

(가톨릭평화신문)
▲ 제46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해 역대 두 번째 가톨릭 신자 미국 대통령이 된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일 아내 질 바이든이 든 성경에 손을 올리고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CNS】



“우리는 하느님 아래 한 민족으로 모였습니다. 저는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연설 중)

20일 제46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조 바이든을 향한 가톨릭 신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20분 넘게 이어진 취임사를 통해 ‘통합’과 ‘치유’를 여러 차례 언급하며 정치, 인종, 사회 모든 분야의 ‘분열 종식’을 선언했다. 미국 주교단은 즉시 성명을 내고 “새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생긴 상처를 치유하고, 극심한 정치, 문화의 분열을 완화해 모든 이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헌신하며 국민들을 한자리에 모이도록 하느님께서 도와주시길 기도한다”고 밝혔다.



성경에 손 얹고 하느님 도움 청한 신자 대통령

미국 교회는 가톨릭 신자인 바이든 대통령이 그가 지닌 ‘신앙 감각’으로 정책을 수행해 나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신자 대통령의 모습은 취임 당일부터 엿보였다. 바이든 대통령 내외는 취임 전 백악관 인근 세인트매슈성당을 찾아 미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취임 선서 때엔 바이든 일가가 1893년부터 가보로 간직해온 불가타 성경의 영문번역본 위에 손을 얹고, 대통령 직무 수행에 하느님의 도움을 청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취임사에서 “복원하고, 치유해야 할 것이 많다”며 “모든 도전을 극복해 미국의 영혼을 복원하고,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화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연설 내내 ‘화합’, ‘통합’, ‘단합’이란 표현을 썼다. 아울러 “정치적 극단주의, 백인우월주의, 국내외 테러리즘에 맞서야 한다”며 “우리가 단합한다면 폭력과 질병, 실업, 절망을 이겨낼 수 있다”고 전했다.



성인의 금언 인용하며 경청 다짐

‘경청’의 의지도 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의견이 다르다고 분열로 가면 안 된다”며 “저를 지지하지 않은 이를 위해서도 열심히 나아갈 것이다.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람은 사랑이라는 공동의 목표에 의해 정의되는 집단’이라고 말했다”며 가톨릭 성인의 금언도 인용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속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저녁에 울음이 깃들지라도 아침에는 환호하게 되리라’는 시편 30장 6절을 언급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은 40만 국민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자고 요청했다. 취임 전날에는 워싱턴대교구장 윌튼 그레고리 추기경과 코로나19 희생자를 위한 추모 기도회도 열었다. 그는 “앞으로 우리나라가 전개해나갈 일들에 각자의 노력과 기도를 더하자”고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 말미에 “분열이 아닌 단합, 어둠이 아닌 빛, 사랑과 치유, 그리고 위대함과 선량함만이 우리를 인도하는 길이 될 것”이라며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호해주시길 기도한다”고도 전하는 등 취임사 내용 곳곳에도 신앙적인 느낌이 담긴 표현들이 많이 등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평소 묵주를 지니고 다니며 기도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오기도 했다. 상원의원과 부통령 시절에도 연설 때마다 성경 구절을 인용하고, 가톨릭 사회교리에 입각한 정책을 주장해오기도 했다.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도 신앙과 교리에 입각한 견해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민자 인도주의·친환경 정책 등 담긴 행정명령 시행

곧장 백악관으로 향한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당일 △전 국민 마스크 착용 의무화 △파리기후변화 협약 복귀 △신규 일자리 창출 △WHO와 관계 회복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예산 지원 중단 △무슬림 국민 입국금지 철회 등 17가지 행정명령에 즉각 서명했다. 보건 위기 대응과 백신 접종 권장, 이민자 인도주의 정책과 국제사회 협조, 친환경 정책 등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향하는 바와 일치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이민자와 노동자를 아우르는 사회보장제도 수립, 공공의료보험 선택권과 저소득 가정 보험 혜택 확대 등 열린 정책을 약속했는데, 서서히 이를 실현에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주교회의는 성명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이 내린 행정명령은 모든 생명이 다시 번성하고, 사랑받는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올바른 방향 전환”이라며 “특히 환경과 인간, 가난하고 취약한 이들을 향한 혜택은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의 보살핌으로 나아가도록 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취임 축하 메시지를 통해 “모든 이들, 특히 가난한 이들의 권리와 존엄, 정의, 자유로 가득 찬 사회를 향해 일하길 바란다”며 “하느님께서 미국이 세계 안에서 이해와 화해, 평화를 증진하는 노력을 기울이도록 인도해주시길 기도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가톨릭 신자임에도 낙태와 동성 결혼을 지지하는 입장을 고수해오고 있어서다. 이에 미국 가톨릭 주교들과 신자들 사이에서도 바이든을 향한 시선이 분분하다. 이에 미국 교회는 올해 전국 차원의 프로라이프 생명운동가와 신자들이 함께하는 생명 대행진 행사 등 낙태 반대의 목소리를 대대적으로 낼 계획이다. 곧 인준될 바이든 내각 26명 가운데 40%가 가톨릭 신자로 알려졌지만, 상당수가 낙태를 찬성하거나 낙태죄에 유보적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