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13. 아버지와 나

(가톨릭평화신문)
나는 6남매 중에 막내로 태어났다. 아주 늦둥이라 나의 기억 속에 부모님은 늘 할아버지와 할머니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다섯 살 때에도 나는 “아버지~”라고 부르며 아버지를 잘 따랐다. 아버지의 무릎은 항상 내 자리였다.

어머니 표현을 빌리자면, 아버지는 ‘법 없이도 살 분’이시다. 너무 욕심이 없으셔서 어머니는 오히려 답답해 하시기도 하셨다. 아버지는 본래 특별한 종교가 없으셨다. 가족이 다 성당에 가도 아버지는 착하게만 살면 된다시며, 신앙생활하는 것을 어려워하셨다. 그런데 내가 첫서원을 하고 본가 방문을 갔을 때에, 아버지께서 볏섬이 쌓인 창고로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는 평생을 고이고이 묻어두셨던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나는 태어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어머니께서 부처님께 봉헌하셨어. 그래서 만약 내가 성당에 가면 어머니를 배신하는 것으로 생각했지. 그런데 네가 이렇게 수녀가 되고, 서원도 하니까 내 마음이 달라지더라. 주일 미사 시간마다 혼자 남아 있을 때, ‘너희 아버지만 안 왔구나’ 하는 소리가 자꾸 들려서 이것저것 일도 해봤다. 그런데 계속 이 소리가 따라다녀. 그래서 가끔 너희 엄마 따라서 성당에 가봤는데, 기도도 할 줄 몰라서 맨 뒷자리에 앉아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어. ‘주님, 여기 죄인이 왔습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게 맞는 거여?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쳐줘.”

나는 아버지의 이 말씀을 들으며, 가슴 속에서 쿵하고 뭔가가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예수님께서 직접 예를 들어 가르쳐 주셨던 세리의 기도를 아버지께서는 이미 하고 계셨다. 이후 아버지는 세례를 받으셨다. 단 한 번도 교리에 늦지 않으시고 열심히 배우시고, 박도식 신부님이 쓰신 「무엇 하는 사람들인가?」라는 교리책을 늘 곁에 두고 공부하셨다. 새벽 네 시가 되면 일어나셔서 기도상에 촛불 켜시고 두 손을 모으셨다. 방문 사이로 은은하게 빛이 새어나올 때면, 두 손 모으고 기도하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장면은 내 마음속 깊은 데에 새겨져 이제 나 자신처럼 다가온다.

이제 구순(九旬)을 넘어 망백(望百)이 되신 아버지께서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다. 마지막이 될 것만 같은 인사를 몇 번 반복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많이 쇠약해지셨다. 해서 지난 추석에는 편찮으신 아버지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배려받고 본가로 갔다.

아버지께서는 더는 앉아서 기도하실 수가 없으셨다. 마지막 남은 기름을 끝까지 다 태우기 위해 기울일 때의 등잔처럼, 아버지 자신의 온몸과 마음을 기울여 끝까지 태우고 계셨다. 내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를 시작하면, 아버지께서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고 함께 기도하셨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하느님밖에 없어”라고 하신 말씀 속에서, 누군가가 곁에 있더라도, 결국 혼자 가는 길임을 아버지께서는 지금 경험하고 계심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를 보게 된다.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축복할 때처럼, 일평생 땅을 섬기며 살아오신 아버지의 삶을 내가 상속받는 느낌이다. 이사악이 제 귀를 열어 주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아버지의 하느님이 아니라 이사악의 하느님이 된 것처럼, 그 새로운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땅과 함께, 우리 아버지의 하느님이시자 나의 하느님이신 분께 오늘도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