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영성’의 순례지 잘츠부르크 장크트 페터대수도원

(가톨릭평화신문)
장크트 페터대수도원(가운데). 696년 설립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으로 꼽힌다. 987년까지 수도원의 아빠스는 잘츠부르크교구장을 겸임했다. 1927년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대수도원으로 승격됐으며, 오스트리아 베네딕도 연합회에서 빈의 쇼텐수도원과 함께 중추 역할을 맡고 있다.

모차르트의 고향, 사운드 오브 뮤직. 전 세계인에게 각인된 잘츠부르크의 이미지입니다. 7월 중순부터 5주간 열리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선율에 몸을 맡기려 이곳을 찾는 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알프스 산기슭에 자리한 이 예술과 음악의 도시가 수도원 전통에서 시작된 뿌리 깊은 신앙의 도시라는 사실을 아는 분은 드물 겁니다.

잘츠부르크의 기원은 고대 로마 제국의 도시인 유바붐(Iuvavum)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일대는 5세기 중엽 복음이 전해졌지만, 훈족과 게르만족 침입으로 서로마 제국의 몰락 이후 폐허처럼 변합니다. 이를 다시 일으켜 세운 인물이 바로 성 루페르토입니다. 그는 보름스의 주교로 7세기 말 바이에른 공작 테오도 1세 요청으로 이곳에 선교사로 오지요. 알퇴팅 성모 성지의 역사에도 두 인물이 등장하죠.
장크트 페터대수도원 성당. 주 제대의 제단화는 삼위일체 하느님과 성모자를 공경하는 사도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성 베네딕토를 그렸다. 천장 프레스코화는 예수님과 성 베드로의 만남을 단계별로 보여준다. 본랑 좌우로 성 베네딕도와 성 루페르토의 삶을 그린 그림이 제단화처럼 걸려 있다. 우측 가운데 성 루페르토의 옛 무덤이 있다.
장크트 페터대수도원 안뜰. 1637년 제작된 분수 가운데 성 루페르토 동상이 서 있다. 수도원 현관에는 용과 싸우는 아기 예수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성 루페르토의 모습이 장식되어 있다.

도시 재건한 잘츠부르크 초대 교구장 성 루페르토

루페르토 주교는 696년경 이곳에 장크트 페터수도원을 설립한 뒤 독일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 동북부뿐 아니라 슬라브 지역까지 복음을 전합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 마리아가 있었던 논베르크수녀원도 그가 세웠지요. 성인은 선교에 그치지 않고, 후대 교회 조직의 기초까지 쌓아 이를 토대로 훗날 성 보니파시오가 독일 바이에른과 프랑켄 지역에서 여러 교구를 설정하게 됩니다.

루페르토 주교는 잘츠부르크의 초대 교구장으로서 도시를 재건한 행정가이기도 했습니다. 공작은 선교 활동에 대한 답례로 당시 공국 경제의 핵심이었던 소금 생산에도 성인을 참여시켰습니다. 성인은 잘츠부르크 남쪽 할라인의 소금 생산과 주변 골짜기 경작지를 개간해 도시 발전의 물질적 기반을 마련했지요. 잘츠부르크(Salzburg)는 ‘소금의 성(城)’이란 뜻으로 성인 덕분에 붙은 이름입니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장크트 페터수도원이 있었습니다. 주교는 715년경 선종하여 수도원 성당에 안장되지요. 수도원이 교구와 분리된 후에는 성 루페르토의 순례지이자 학문과 예술의 요람으로 독자적인 길을 걷습니다.
기둥 위의 성모 제대의 ‘아름다운 마돈나’(1420년경). 수도원과 잘츠부르크 시민의 성모 신심의 대상이었다. 성모님의 부드럽고 우아한 모습과 정교한 주름 의상, 장난기 있는 표정을 한 아기 예수가 특징으로 중세 말 불안한 시대의 위로와 희망의 상징이었다.

오스트리아 베네딕도회의 본향

중세 장크트 페터수도원은 학문과 필사의 중심지였습니다. 약 10만 권의 장서를 보관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지요. 이런 전통에서 1622년 잘츠부르크 대학교의 전신인 베네딕도회 대학교가 설립됩니다. 설립 당시 교수진 다수가 이곳 수도자였습니다. 수도자들은 대학에서 철학·신학·고전어·문헌학 등 교육을 주도했고, 베네딕도회 전통이 대학 정신에 깊이 녹아들게 됩니다. 이 대학교는 1810년 해체되지만, 1926년 페트루스 클로츠 아빠스에 의해 수도원 국제대학이 새로 설립됩니다. 이 시기 수도원은 대수도원으로 승격되며 명성을 이어가지요. 음악도 수도원 정체성을 잘 드러냅니다. 모차르트는 친구 도미니쿠스 신부의 첫미사를 위해 ‘C장조 미사곡 K.66’을 작곡했고, 하이든도 작품을 남겼지요.

잘츠부르크를 가본 분은 도심에 그런 수도원이 있었나 싶을 겁니다. 대성당 광장 맞은편 묀흐베르크 기슭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호엔잘츠부르크성을 가려다 그곳 수도원 묘지로 들어가 사진만 찍고 나가죠. 네, 암벽에 카타콤바가 있는 곳이 장크트 페터대수도원입니다.

잘츠부르크역에서 수도원까지는 걸어서 20분 남짓 거리입니다. 미라벨궁을 지나 잘차흐강을 건너면, 바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지이고, 모차르트 생가가 있는 ‘게트라이데가세’를 지나면 서서히 대성당 쌍탑이 나타나지요. 
수도원 묘지인 페터스프리트호프. 700년경 수도원 건립 당시 조성됐지만, 이미 고대 후기 조성된 ‘카타콤바’가 있었다. 성녀 게르트루다와 순교자 막시무스에게 봉헌한 소성당이 있다. 거리에서 수도원을 거치지 않고 묘지로 들어갈 수 있다.

도심 속 영성 쉼터 장크트 페터대수도원 성당

장크트 페터 수도원 안뜰에 들어서면 성 루페르토 동상이 있는 분수 너머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이 하늘을 가릅니다. 성당의 좁은 본랑 덕분에 내부가 밝고 높다고 느낄 겁니다. 흰색 바탕에 녹색으로 디자인한 섬세하고 화려한 로코코 양식의 치장 벽토가 경쾌한 느낌을 더해줍니다. 한때 이곳이 평평한 나무 천장이 있는 바실리카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만, 기둥과 기단부 일부에 옛 로마네스크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720년경 이 자리에 지금 규모의 큰 성당이 이미 서 있었습니다. 잘츠부르크대성당이 세워지기 전이었으니 수도원 성당이 아마 주교좌 성당을 겸했을 겁니다. 수도원 단지가 대성당 단지와 연결된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전란으로 수도원이 파괴된 자리에 1130~1143년 로마네스크 양식의 삼랑 구조 성당이 지어졌으며, 여러 차례 개축과 리모델링을 거쳐 18세기에 오늘날 돔이 있는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수도원 성당은 회화 미술관 같습니다. 정면의 주 제단은 삼위일체 신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 베드로 사도의 삶을 주제로 한 천장 프레스코화뿐 아니라 본랑 양쪽으로 성 베네딕도와 성 루페르토 등의 삶을 그린 성화가 제단화처럼 가득 채워져 있어 그림을 보며 성인의 삶을 묵상할 수 있지요. 수도원 묘지와 고대의 카타콤바도 우리 신자들에게는 또 다른 묵상 거리를 던져줍니다.

현대의 순례는 옛날처럼 먼 거리를 떠나는 고행만을 뜻하진 않습니다. 과거의 신앙, 예술과 음악이 결합한 공간 속에서 하느님과 만나는 순간도 순례가 될테지요. 관광객으로 붐비는 잘츠부르크 중심에서 장크트 페터대수도원은 그런 순간을 제공해주는 공간입니다. 영성의 심장 박동처럼 살아 뛰면서 오늘도 순례자에게 그 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순례 팁>

※ 잘츠부르크 대성당 광장 맞은편 길로 들어가면 왼편으로 수도원 안뜰로 들어가는 정문과 수도원 성물방이 보인다.

※ 수도원 성당 미사 : 주일과 대축일 10:15, 평일 : 7:00. 매일 5번 시간 전례가 있다. 주기적으로 모차르트나 하이든의 교회음악 콘서트가 열린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 레스토랑에서도 디너 음악회가 열린다.

※ 유럽의 다른 순례지에 관한 더 자세한 정보는 「독일 간 김에 순례– 뮌헨과 남부 독일」(분도출판사,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