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신앙] (36) 착한 사마리아인 법(전성호 베르나르도, 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가톨릭평화신문)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 사람의 심장은 ‘정신의 자리’로 여겨졌다. 따라서 죽은 이를 미라로 만들 때 대부분의 내장 기관은 제거했지만, 심장은 사후 세계에서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척도로 여겨졌기에 방부 처리한 후 제자리에 두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심장을 ‘지식의 자리’라며 몸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여겼다. 하지만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지능과 감정을 담당하는 것은 심장이 아니라 뇌라고 주장했으며 로마 시대의 의학자 갈레노스 역시 뇌가 사람의 생각과 정서·기억을 조절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뇌와 심장은 예로부터 중요하게 여겨진 신체 기관이며 뇌와 심장에 이상이 있을 경우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뇌는 사람이 하루에 소비하는 전체 에너지양의 20%와 전체 산소량의 30%를 소비하는데, 뇌에 에너지와 산소를 공급해주는 펌프 역할을 하는 것이 심장이다. 사람의 심장은 보통 자기 주먹만 한 크기로 질량은 250~350g 정도이며 근육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약 심장이 정지해 뇌에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 4~5분 후에 뇌세포 손상이 시작되고 의식 소실 및 사망으로 이어진다. 심정지로 쓰러진 사람에게 즉각적인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해야 하는 이유다.

2022년 5월 서울 구로구에서 중국 국적의 한 40대 남성이 길을 가던 60대 노인을 이유 없이 무차별 폭행해 쓰러뜨리고 사망하게 한 사건이 뉴스에 보도되었다. 경찰 조사 결과 놀랍게도 길 가던 50여 명의 행인이 쓰러진 노인을 본채 만채 지나친 것이 주변 CCTV에서 확인되어 더욱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그때 누군가 빠르게 심폐소생술만 실시했어도 귀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 현장에 착한 사마리아인은 없었던 것이다.

프랑스·독일·벨기에·핀란드·이스라엘·호주·캐나다의 일부 주에서는 ‘자신 또는 제3자의 위험을 초래하지 않고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을 구조할 수 있음에도, 고의로 구조하지 않은 자에 대하여 구금 및 벌금에 처한다’고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 주일 미사 복음에서는 강도를 당해 쓰러진 사람을 도와준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루카 10,30-37)가 나오는데 이 말씀에서 따온 법을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법이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으며 대신 ‘응급의료 종사자가 아닌 사람이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死傷)에 대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傷害)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아니하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는 면책 조항 정도만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 2항에서 명시하고 있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항을 법률로 강제하거나 처벌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이기적 유전자뿐 아니라 성선설이나 성악설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됨의 고결한 유전자가 분명히 있다. 자신의 이해득실을 떠나 참 신앙인이라면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할 상황에서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라는 말씀을 몸이 먼저 기억하고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전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