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범과 예절

(가톨릭평화신문)


오늘 제1독서의 신명기 말씀에 따르면 율법서에 쓰인 계명과 규정들은 사실 힘든 것도,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하늘에 있지도, 바다 저쪽에 있지도 않고 우리의 입과 마음에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다고 한다.(신명 30,10~14 참조) 우리가 사회를 살면서 지켜야 하는 법과 예절의 근원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다.

법의 본질은 남의 것을 함부로 빼앗지 않고 서로의 생명을 존중하며 서로 불편한 부분들을 미리 지정해 싸울 거리를 없애는 것에 있다. 공자도 길거리에 재를 뿌리는 이를 엄히 처벌하는 것을 과한 법이라고 비판하는 무리에게, 이 법을 만든 이는 현명하다고 하였다. 재를 뿌리는 행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재를 맞은 사람들끼리 있을 다툼을 방지하려는 의도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를 규제하는 규율은 명문화되면 ‘법’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명문화되지는 않았지만, 사회의 상식 선에서 암묵적으로 지킬 경우 ‘예절’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성경 말씀처럼 우리의 입과 마음에서 비롯된 규칙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모두 지키며 살기는 어렵다. 나의 이득을 위해, 또는 편리를 위해 ‘법’을 위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사회는 누구나 예상하는 것처럼 소돔과 고모라의 재탕이 될 것이다.

하지만 ‘법’을 지키지 않고 잘 사는 무리를 보면, 그리고 당장의 편의를 생각하면 유혹에 빠지기 쉽다.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제재가 크지 않은 예절에 대해서는 더욱 관대하다. 공동체로 살면 집단이 저지르는 실수에 대해선 더욱 너그럽게 된다. 누구나 다 예절을 지키지 않으면 불편해질 것을 알면서도 ‘나 하나면 어때, 다 하는데 어때’ 하는 생각이 만든 결과다.

클래식 공연장이 다른 음악 분야보다 좀 더 예절에 엄격한 것은 음악의 성격이 조금 독특하기 때문이다. 공연 중 소리를 내거나 옆 사람과 대화하면 대중음악에 비해 볼륨이 작은 음악 특성상 다른 관객들이 불편하다. SNS에 사진과 동영상 올리는 것이 일상이 된 요즘, 연주 도중 사진 찍는 이들도 문제가 된다. 공연 중 번쩍이는 화면은 연주자들이 당황하게 만든다.

바로 얼마 전 유서 깊은 성당의 연주회에서 플래시를 터트리는 관객도 보았다. 이런 이들을 말리기 위해 한시도 쉬지 못하는 공연장 직원들의 고생이 심하지만, 어린 직원들이 다가서면 반말로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 오히려 핏대를 세우는 이들이 있다. 특히 연주자들이 앙코르를 할 때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이들은 연주자의 초상권과 저작권을 침해하는 위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 치는 것도 그렇다. 오래전에는 악장 사이에 박수 치는 것이 종종 허용되었다. 유럽의 유명 콘서트홀에서도 여전히 악장 사이에 박수가 나오곤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않는 것이 연주자와 청중 모두에게 집중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는 공감대와 경험이 쌓여왔다. 곡이 끝나고 연주자가 인사할 때 박수 치면 된다.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좋은 관계는 관계를 잇는 행동을 할 때 만들어진다.


조성진이 연주하는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1. 물의 요정이다.
//youtu.be/cI5NW9lIaGU


작곡가 류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