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가치있게 하는 길

(가톨릭평화신문)



우리 주위에 교회를 떠난 사람이 많다. 필자와 첫영성체를 같이 했던 친구 중 성당에 나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선을 더 넓혀 믿지 않는 사람을 향해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들은 왜 믿지 않는 것일까? 그런데 그들 편에서 보면, 성당에 나가는 우리가 더 이상하게 보이리라. 그리고 묻는 듯하다. 당신들은 어째서 믿는 것이오?

사실 믿든 믿지 않든 우리는 모두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 잠시 혹은 오랫동안 길을 잃거나 멈추어 있을 뿐 우리는 삶의 완성, 곧 구원을 찾아 걸어가는 중이다. 누군가에게는 빨리, 누군가에게는 천천히 물음을 던질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우리 삶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우리 삶을 완성시킬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던지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다음 말씀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 13,12)

체험에 비추어 볼 때, 영적인 성장은 계속해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퇴보하기 마련이다. 우리 중 짧게 혹은 길게 신앙을 멈춰본 분들이 계실 것이다. 당장은 성당에 나가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니 편하고 자유로운 것처럼 느껴진다. 그동안 못한 것들, 즉각적으로 끌리는 것들에 심취하게 된다. 그런데 세상 유혹이 세차게 밀려오고,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며 사노라면, 어느 순간 피폐해진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가 온다. 그리고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 참조)의 작은아들처럼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으로 자문하게 된다. 내가 무엇하다 이렇게 된 것일까?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던 때 경험했던 기쁨과 행복의 순간이 떠오른다. 마음을 먹고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이렇게 돌아온 아버지의 집, 함께 노래하고 기도하며 하나 되는 공동체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사는 삶이 이런 것이로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 신앙생활을 통해 영적이며 육적인 양분을 공급받고, 건강을 유지하며 구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잘 깨닫지 못하지만, 가정을 떠난 후에야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처럼 우리에게 교회는 가정과도 같은, 아니 가정보다 더 소중한 공동체다. 교회는 우리가 하느님의 참 자녀가 되도록, 참 인간이 되도록 우리를 훈육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인간미 넘치는 인간이 되고, 우리 삶이 신앙을 통해 아름답게 무르익도록 인도한다.

천주교 신자로 산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의무를 준수하는 것 그 이상이다. 한 주에 한 시간 미사를 위해 시간을 내놓는 것은 삶의 중심을 하느님께 두고 세상과 다른 이상을 지향하며 자기 영혼을 보살핀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당에 가서 미사에 참여하고 공동체와 함께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면, 어떻게 내가 혼자가 아니라 하느님 백성이고 공동체 일원이며 이들과 함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고해성사를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양심을 깨끗이 닦고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하느님께 돌아오는 기쁨을 배울 수 있으랴. 성체를 모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의 그 극진한 사랑을 체험할 수 있으랴. 일상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루가 선물임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세상에서 빛을 내고 소금과 같은 맛을 낼 수 있겠는가.

이처럼 믿지 않는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교회의 삶이 지닌 숭고한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도록 초대되고 있다.



한민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