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4세 교황이 7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주례한 카를로 아쿠티스의 시성식에서 카를로의 가족과 만나고 있다. 왼쪽부터 여동생 프란체스카, 어머니 안토니아 살차노, 아버지 안드레아 아쿠티스, 남동생 미켈레. OSV
참 특별한 시성식
부모와 동생들, 그리고 친척과 친지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물론 친구들도 찾아왔지요. 그뿐만 아니라 오늘의 주인공과 인연을 맺은 많은 이가 열일 제치고 멀리서 찾아왔습니다. 모임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밝은 표정으로 오늘의 주인공을 축하해줄 뿐만 아니라 서로 축복의 인사를 나눕니다. 혼인 예식을 상상하셨나요? 아닙니다!
평신도 소년의 시성식
2025년 9월 7일 레오 14세 교황께서는 피에르 조르조 프라사티(1901~1925년)와 카를로 아쿠티스(1991~2006)를 함께 성인품에 올리는 시성식을 주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시성식 현장에는 아쿠티스 성인의 부모와 동생들, 학교 친구들, 동네 사람들, 카를로에게 도움을 받았던 수많은 사람이 함께했습니다.
프라사티 성인은 선종 후 100년이 되어서야, 그리고 우리나라 103위 성인은 순교 후 100년이 훨씬 넘어서야 시성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가족과 친인척, 친구들이 다 함께 시성식에 참여하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카를로 성인이 겨우 열다섯 살에 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복시성 절차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평범한 가정생활을 했던 평신도 소년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아쿠티스의 쌍둥이 동생 미켈레와 프란체스카
카를로 아쿠티스는 외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쌍둥이 동생이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급성 백혈병으로 성 제라르도 병원에 입원했던 카를로는 죽음이 다가왔음을 확신했습니다. 카를로의 어머니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합니다. “카를로는 하늘나라에서 제게 많은 표징을 보내줄 것이라고 말했어요. 제가 카를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 얼마만큼 불안해하는지 카를로는 잘 알고 있었지요. 카를로의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제가 카를로 없는 세상에 남겨지는 것이었어요.”
4년이 지난 어느 날, 카를로는 어머니 꿈에 나타나 다시 ‘엄마’로 불리게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임신이 된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 카를로 어머니의 나이는 마흔넷이었고, 이후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2020년 10월 20일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에서 거행된 카를로 아쿠티스의 시복식에는 부모님뿐만 아니라 쌍둥이 동생 미켈레와 프란체스카도 함께 있었지요.
물론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카를로 아쿠티스의 시성식에도 카를로의 가족 네 명이 함께했고, 남동생 미켈레 아쿠티스는 제1독서를 봉독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또 있습니다. 열아홉 살 터울이 있는 형제간이라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인데, 카를로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가 열다섯 살, 그리고 아쿠티스의 시성식에 참여한 쌍둥이 동생의 나이가 열다섯 살이라는 것입니다.
시성식에 참석한 어머니의 마음
아들이 시성되는 장면을 지켜볼 수 있는 어머니가 또 있을까요? 참으로 특별한 은총을 받은 아쿠티스 성인의 어머니 심정을 들어봅시다. “하느님께서 오래전에 제게서 아쿠티스를 데려가셨지만, 오늘은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으로 제게 다시 데려다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만의 아들이 아닙니다. 온 거룩한 교회가 저와 함께 기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성식이 끝나고 성 베드로 광장은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아쿠티스 성인의 사진과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던 이들은 지금 어디 있을까요? 시성식 장면을 화면으로 지켜보며 가슴 벅차하던 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카를로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카를로는 각자 안에 내재된 성덕의 씨앗을 잘 키우라고 우리를 북돋아 줍니다. 카를로가 모범을 보여주었듯이 말이죠. 카를로가 가르쳐준 성덕의 재배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체성사와 고해성사, 주일 미사+평일 미사, 성체조배, 날마다 바치는 묵주기도, 성경 봉독, 기도, 선행.’”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내 안의 성덕을 키우고 가꾸는 일은 우리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