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성인] 한국 성인 103위 (9월 20일)

(가톨릭평화신문)
현석문 가롤로 성인. 가톨릭평화신문 DB


현석문(가롤로, 1797~1846) 성인은 현계흠(플로로, 1763~1801) 복자의 아들이자 기해박해 때 순교한 현경련(베네딕타, 1794~1839) 성녀의 동생입니다. 그의 아내와 아들도 같은 시기 순교했습니다.

현석문의 생애는 한마디로 선교사이자 교우들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복자 주문모 신부가 순교한 뒤 조선 땅에 성직자가 단 한 명도 남지 않았을 때, 현석문은 유진길(아우구스티노)·정하상(바오로)·조신철(가롤로) 성인 등과 의논해 성직자 영입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성 앵베르 라우렌시오 주교를 영입하기 위해 중국에도 다녀왔고, 샤스탕 신부의 복사로 그를 수행하던 중에 기해박해가 일어났습니다.

현석문은 이때 자수하려 했지만 선교사들의 만류로 살아남았고, 교우들이 포졸들에 잡히지 않도록 돌봐줬습니다. 앵베르 주교는 세상을 떠나기 전 조선 교회를 그에게 맡기기도 했습니다. 현석문은 앵베르 주교의 뜻에 따라 ‘이재영’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면서 새 신자들을 격려하고, 가난한 이를 돕는 등 동분서주했습니다.

또 앵베르 주교의 명으로 기해박해 전후 순교자들의 전기인 「기해일기」를 완성했습니다. 현석문은 포졸들의 눈을 피해 신자들의 이사를 도와주던 중 짐꾼들의 고발로 체포되었습니다. 끌려간 곳에는 이미 김임이(데레사)·이간난(아가타)·정철염(가타리나)·우술임(수산나) 등이 붙잡혀 있었는데, 이때가 1846년 7월 15일입니다. 이렇게 현석문은 반역 죄인으로 군문효수형을 선고받고, 9월 19일 새남터에서 49세 나이로 하느님 품에 안겼습니다.

 
김제준 이냐시오 성인. 가톨릭평화신문 DB


한국인 첫 사제 성 김대건 신부의 부친 김제준(이냐시오, 1796~1839) 성인은 1814년 순교한 김진후(비오) 복자의 손자입니다. 이렇듯 그는 이미 여러 차례의 박해로 시련을 당한 신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신심이 두텁고 매사에 성실했던 김제준은 만사를 주님의 섭리에 맡긴다는 자세로 살았습니다. 심지어 아들 대건을 떠나보낼 때에도 모든 것을 오로지 주님의 안배와 섭리에 두었습니다.

아들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뒤 김제준도 관헌들의 추격을 받았습니다. 1839년 기해년 9월 중순 배교자 김여상이 포졸을 이끌고 그의 집에 들이닥쳤습니다. 증인들의 말에 의하면 김제준은 힘이 장사라 대여섯 사람은 거뜬히 해치울 수 있었지만, 조금도 반항하지 않고 포승줄에 묶였다고 합니다.

김제준은 가혹한 형벌에 배교하기도 했지만, 옥에 있는 신자들의 설득으로 다시 형조에 출두해 배교를 취소했습니다. 이후 세 차례나 혹형을 당했고, 결국 마음을 굽히지 않은 채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가 서문 밖에서 참수당한 때는 1839년 9월 26일, 44세였습니다.

김제준은 1925년 7월 5일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시복됐고,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해 사목방한한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984년 5월 6일 동료 순교자들과 함께 시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