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이 전 세계의 성체 기적 이야기와 사진을 모두 모아 만든 웹사이트의 첫 화면. 현재 이탈리아어와 영어를 비롯하여 19개 언어로 제공되고 있다.
성체 기적을 한곳에 모은 인터넷 전시관
“카를로는 아홉 살 때 밀라노 공과대학에서 구입한 컴퓨터 공학 교재를 읽으며 알고리즘을 배우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여름방학을 즐기기보다는 새벽 3시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때도 많았지요.” 카를로 성인의 어머니가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소년 카를로는 늦은 시간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란치아노 순례와 리미니 미팅에서 착안한 전시 기획
성인은 가족과 함께 란치아노로 순례를 갔었고, 그곳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서 750년에 일어난 성체 기적 사건을 알게 됩니다. “카를로는 그 성체 기적에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평소 많은 사람들이 축성된 빵과 포도주에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현존하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감실 앞이 텅 빈 것을 봐왔던 카를로는 그들의 의식을 흔들어 깨우고 무감각하고 무관심한 태도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함께 순례길에 올랐던 카를로 어머니의 말입니다.
이후 성 카를로는 2002년 이탈리아 ‘리미니 미팅’(Rimini Meeting)에 갔다가 그곳에서 마련한 전시들을 유심히 살펴보게 됩니다. 그리고 란치아노에서 마음먹은 그 무언가를 실현시킬 방법을 고안해냅니다. 교회가 인정하는 성체 기적에 관한 전시를 인터넷상에서 만들기로 한 것이지요.
세상의 성체 기적
성인이 제작한 웹사이트 가운데 가장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바로 ‘세상의 성체 기적’입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2년 반가량 가족과 함께 전 세계에서 일어난 성체 기적을 모두 모은 것이지요. 이 웹사이트는 ‘카를로 아쿠티스 친구들 협회’가 계속해서 운영하고 있으며, 다음 주소(//www.miracolieucaristici.org)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성체 기적 이야기를 쉽게 풀어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진도 함께 전시돼 있어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2016년 책으로도 발행됐고, 이 책을 우리말로 번역해 2021년 5월 출간한 것이 「하늘나라로 가는 비단길 - 성체 기적의 발자취를 따라서」입니다.
계속되는 성체 기적 이야기
2006년 성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성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선종 후 열흘가량 지났을 때, 그러니까 2006년 10월 21일 멕시코 틱스틀라에서는 성체에서 성혈이 흘러내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 폴란드 소쿠카(2008년 10월 12일)와 레그니차(2013년 12월 25일)에서도 유사한 성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살로 변한 성체의 일부 조직과 성혈을 정밀 분석한 결과, 늘 같은 결론이 도출되었다는 것입니다. 심한 고통을 겪는 사람의 심장 근육이며 혈액형은 AB형입니다.
카를로 아쿠티스의 성체 기적 모음에서 영감을 받은 다큐멘터리 영화도 탄생했습니다. 마태오 체카렐리 감독의 ‘표징’(원제: Segni)이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란치아노(이탈리아)·틱스틀라(멕시코)·레그니차(폴란드)·소쿠카(폴란드)에서 일어난 성체 기적 이야기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2018년 바티칸에서 상영되었으며, 신앙과 과학 분야를 조화롭고 흥미롭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성지에서 느끼는 순교 성인들의 믿음
카를로 성인은 가족과 함께 성체 기적 자료를 정리하면서 되도록 기적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보고자 노력했다고 합니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을 좀더 가까이서 느끼며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더욱 견고히 했을 것입니다. 103위 성인을 모시고 있는 우리도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어렵지 않게 성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카를로 성인이 그랬던 것처럼 배낭 메고 운동화 신고 가까운 성지를 방문해보면 어떨까요? 주님을 위해 목숨 바친 우리 순교 성인들의 믿음을 좀더 가까이 느끼며, 우리 마음속에 숨어있는 성덕을 발견할 기회가 될 것입니다. 순교자 성월 9월이 지나가고 묵주 기도 성월 10월이 다가오는 요즘, 순례길을 나서기 좋은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