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의 관계 회복은 자신을 사랑하는 첫 번째 선택

(가톨릭평화신문)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미움으로 거부할지, 용서로 변화시킬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 변화를 이끄는 가장 강력한 힘은 사랑과 용서라는 거룩한 에너지다. 가을을 맞아 가족 단위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뉴시스

“아버지에게 사랑받은 기억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이런 고백을 생각보다 많은 남성에게서 들었다. 지인 S도 그중 한 명이다. 병상에 누운 아버지를 여전히 용서하지 못한 그는 어린 시절, 1등이 아니면 매를 맞아야 했던 고단한 날들을 보냈다. 부모가 바라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녔지만, 은퇴한 지금도 아버지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S는 자신이 물려받은 것이 재산이 아니라 아버지 삶 속 깊이 새겨진 부정적 자화상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 그림자는 아버지와의 반복된 관계 속에 길러진 감정의 습관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표현하는 데 서툴고, 완벽을 추구하며,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까지. 그는 이런 닮음을 떨쳐내기 위해 오래도록 싸워왔다.

사실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방식으로 부모의 정서적 습관을 물려받으며 성장한다. 습관은 행동에만 머물지 않는다. 감정과 생각 또한 반복을 통해 패턴이 된다. 아기는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가 먹는 음식, 듣는 소리,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자란다. 그리고 부모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신만의 인격을 만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뇌 속 시냅스와 신경망이 강화되고, 기본적인 정서와 인지의 패턴이 차츰 자리 잡는다. 특히 아동기의 뇌는 여섯 살 전후까지 성인보다 훨씬 많은 신경 연결망을 가지고 있다. 마치 무수한 가지가 뻗은 나무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품지만, 효율을 위해 점차 가지치기를 시작한다. 자주 사용되는 연결은 더 단단해지고, 덜 쓰이는 연결은 서서히 약해진다. 결국 부모와의 반복된 경험이 신경 패턴을 형성하며, 이렇게 우리 뇌의 지도가 그려져 간다.

우리 가족을 떠올려봐도 부모와의 반복적 경험이 남긴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교육 수준이나 환경이 달라도 웃는 모습과 말투, 대화 습관까지 놀라울 만큼 닮아있다. 외모보다 더 깊이 각인된 것은 부모와 함께한 시간 속 감정과 기억일 것이다.

우리는 부모에게서 단순히 겉모습만 닮는 것이 아니다. 함께 울고 웃는 시간 속에서 특정한 정서의 방식이 뇌 깊숙이 새겨진다. 어려움 속에도 유머를 찾는 습관, 타인을 향한 따뜻한 시선, 문제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태도, 혹은 화를 내고 비판하는 방식까지도 물려받는다. 그러나 그런 부정적 패턴 속에 갇혀 살 필요는 없다. 우리 뇌는 평생 변할 수 있는 ‘신경가소성’을 지니고 있다. 지속적이고 의도적인 경험을 통해 새로운 연결을 만들고, 기존 방식을 서서히 고쳐갈 수 있다.

아버지를 미워하던 S 역시 자신의 감정 습관을 자각하는 순간부터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완벽을 내려놓고 실수를 허용하는 작은 연습이 새로운 신경 경로를 열어줄지도 모른다. 그 변화는 더디더라도 분명 가능하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뇌의 습관은 성격이나 행동을 넘어 삶의 토대를 이룬다. 감정과 관계, 일상의 패턴 속에 스며들어 평생 함께할 수도 있다. 그래서 부모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일은 단순한 감정을 정리하는 차원을 넘어, 자신을 다시 세우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터닝 포인트가 된다. 아버지에게 받은 사랑이 부족했다면, 적어도 내 자녀만큼은 ‘부모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경험을 하도록, 그 부정적 대물림을 끊어야 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하려는 그 순간 나 자신도 이해하게 되면서 부정적 감정 습관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내 안에 남아있는 ‘아버지 모습’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때, 비로소 그토록 끊고 싶던 닮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심리적 치유를 넘어서는 깊은 영적 변화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행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유롭게 하는 길이다.

가끔 S의 얼굴에 스쳐가는 천진한 미소를 볼 때가 있다. 그 웃음은 아버지에게서 받은 상처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살아남은 순수한 생명력일 수 있다. 어쩌면 그 순수함 속에서 희망이 싹트고 치유가 시작되는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영성이 묻는 안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미움으로 거부할지, 아니면 용서로 변화시킬지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뇌과학이 말해주듯 우리 뇌는 평생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이끄는 가장 강력한 힘은 바로 사랑과 용서라는 거룩한 에너지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수동적 수혜자가 아니라, 미래를 능동적으로 창조하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충분히, 그리고 반드시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제 추석이 다가옵니다. 혹시 가족 안에서 오래된 상처 때문에 여전히 마음의 거리를 두고 계신가요? 부모에게 받은 기억이 아프고, 형제자매와의 오해가 풀리지 않아 그 상처의 자리에 머물러 계시나요? 신앙생활은 열심히 하면서도 마음 한켠이 무겁게 남아있는 분들, 어쩌면 용서가 필요한 이는 멀리 있는 친구나 동료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가족일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삶의 패턴과 감정습관을 물려준 부모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은 곧 자신을 사랑하는 첫 번째 선택이자 하느님께 더 깊이 다가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마태 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