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가 없는 악의 직접적 원인은 인간의 ‘자유의지’

(가톨릭평화신문)
철학에서 가장 심오한 개념이 있다면 다름 아닌 ‘악(惡)’일 것이다. 오래전부터 철학은 악의 기원과 본질, 그리고 그 현상을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악은 ‘선(善)’의 대립 개념으로서 ‘선의 부재’ 혹은 ‘선의 결핍’을 의미한다. 그 자체가 신비롭기까지 한 악의 부정적인 요소는 그것으로 인해 인간이 절망하며 ‘죄스러운 존재’가 된다는 점이다. 악이 철학적으로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악 자체가 인간을 고통으로 내몰기 때문이다.

악은 세상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연재해처럼 이해 불가한 악이 있으며, 무지와 같이 무심코 저지르는 악, 그리고 ‘구조적 악’처럼 불가피해 보이는 악이 있다. 치유와 관련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에 의해 빚어지는 다양한 악의 모습이다. 그런 악이 인간에게 상처를 주고, 직접적으로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악이 인간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은 맞지만, 악과 고통이 엄밀하게 서로 환치 가능한 개념은 아니다. 고통이 항상 악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기에 그렇다. 고통을 불쾌한 감정으로 이해한 에피쿠로스(Epicouros, BC 341~270)의 관점에서 볼 때 고통은 곧 불행이자 악으로 판단될 수도 있겠지만, 자기방어 기제로서 신체적 고통이나 한계 상황과 같은 고통은 분명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악의 기원 및 본질과 관련해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는 완전한 존재는 그 자체로 바랄만한 것, 즉 ‘최고선’이기에, 악은 사실 실체로서가 아니라 다만 ‘존재 결핍’의 현상으로 존재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악은 결핍된 선에 붙어 존재할 뿐 악이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나타난 악은 참된 존재(실체)도, 그렇다고 전혀 없는 것(절대 무)도 아니며, 오로지 ‘상대적 무’로서 불완전한 존재 결핍(우유, 偶有)의 모습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실체가 없는 악의 직접적 원인은 무엇일까? 철학은 전통적으로 그 원인을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찾는다. 윤리적 관점에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부정적으로 행해질 때 이를 ‘도덕적 악’으로, 특히 인간의 그릇된 자연 본성에서 비롯될 때 ‘근본 악’으로 규정한다. 다시 말해 도덕적 악 혹은 근본 악은 인간 본성에 근거해 바람직하게 있지 못함을 뜻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는 ‘비진리를 허용하는 자유에 악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악을 ‘사유의 부재에서 비롯된 평범성’으로 규정한다. 즉 악의 뿌리는 우리가 올바로 사유하고 판단하지 못하는 ‘무능력’에 있는 것이지, 외부에 그 어떤 거대 악의 실재가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악의 실제가 그런 만큼 우리에겐 악을 극복하기 위해 평소 올바로 사유하고 판단하는 습관과 훈련이 필요하다. 올바른 인간관계를 위한 소통도 중요하다. 잘못된 관계로부터 오는 악의 현상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타자를 소유하려는 그릇된 욕망은 부적절한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악의 가장 일반적 모습이다. 이런 부적절한 관계는 지식의 차원에서는 대화와 소통의 부재 현상을, 의지의 차원에서는 권력과 지배 현상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