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오라토리오 <마르티레스>…“역사와 종교의 찬란한 조우”

(가톨릭신문)

조선 땅에 천주교를 뿌리내린 이벽(요한 세례자)·이승훈(베드로)·권철신(암브로시오)·정약종(아우구스티노)을 비롯해 수많은 무명 순교자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 오라토리오 <마르티레스(MARTYRES)>가 최근 국제 음악 공모전 ‘비발디국제경쟁음악상(Vivaldi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에서 ▲합창·앙상블 음악 부문(Choir/Ensemble Music) 작품 대상(Grand Prize)과 창작곡(작곡) 부문(Original Composition) 최고 작곡상(Absolute First Prize)을 수상하며 2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오라토리오를 함께 작업한 김재청(솔로몬·아트팜엘케이 대표) 작가와 이지은 작곡가를 만나 작품의 의미와 작업 과정, 수상 소감 등을 들었다.


오라토리오의 대본을 완성한 김 작가는 “<마르티레스>는 ‘역사와 종교의 찬란한 조우’”라며 “순교자들의 희생은 종교적 기록을 넘어, 한 민족과 나라의 역사를 동시에 담고 있기 때문에 오라토리오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이 감동적인 사실을 알리고자 했다”고 전했다.


<마르티레스>는 천진암 강학회, 이승훈의 세례, 수표교 모임, 명례방 종교집회, 신유박해로 이어지는 초기 천주교인들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그만큼 두 창작자의 역사와 종교 연구 등 오랜 노력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김 작가는 “이번 작품의 바탕이 된 구한말 강화도 여성 신자의 일대기를 그린 오페라 <시간 거미줄>부터 이승훈을 주인공으로 한 칸타타 <초석>, 그리고 <마르티레스>를 완성하기까지 15년의 여정을 걸었다”며 “특히 <마르티레스>는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와 대학교 도서관 등 다양한 교회·연구 기관의 학술 자료 300권 이상을 토대로 지었다”고 밝혔다.


음악 형식적으로 대규모 편성을 요구하는 오라토리오의 특성상 <마르티레스>는 오케스트라, 성악과 합창, 판소리·해금·대금 등 국악, 라틴어와 영어까지 결합됐다. 작품의 끝부분이 조선의 모든 순교자를 위한 대합창으로 영어 가사를 붙인 가스펠 성가로 마무리되는 것 역시 특징이다.


이 작곡가는 “작품은 장엄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아닌 축제 같은 느낌으로 끝을 맺는다”며 “우리가 옛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단지 옛 사건에 그대로 머물러 있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거울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서양 음악과 국악, 한국어와 라틴어, 영어까지 많은 음악과 언어가 섞여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양장을 입고 한식을 먹듯이 우리의 삶은 이미 다양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며 “음악과 예술도 우리 생활처럼 다양한 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도록 했다”고 말했다.



뼈아픈 역사적 사실은 웅장하면서도 섬세하고, 처연한 음악을 입고 관객들의 마음에 가닿는다. 이들은 지난 9월 20일 서울대교구 당고개 순교성지에서 펼친 공연에서 관객들 눈물에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고 전했다.


김 작가는 “작품을 쓰는 동안 깊은 고민에 잠기고 때론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공연을 관람하고 감동을 받는 신자들의 모습에 결국 하느님께서 이 작품을 위해 저를 보낸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이어 “글이 막힐 때 명동대성당의 이벽 초상화를 자주 찾았다”며 “큰 상까지 받게 돼 더할 나위 없이 기쁘지만, 언젠가 작품의 실제 배경인 명동대성당에서 공연하는 것이 꿈”이라고 덧붙였다.


이 작곡가는 “처음 완성된 대본을 살펴보며 현재 나의 삶과 고민이 이 처절한 역사 앞에서는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면서 “많은 사람이 작품을 통해 지금으로도 충분하다는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오라토리오 <마르티레스>는 멜론, 스포티파이, 유튜브 뮤직 등 주요 음원 사이트에서 감상할 수 있다.


황혜원 기자 hhw@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