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예감한 카를로 성인의 마지막 인사

(가톨릭평화신문)
성 제라르도 병원에 도착했을 때 카를로 아쿠티스는 죽음을 예감하고 어머니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결국 카를로는 이 병원에서 선종했다. 챗GPT 생성 이미지



2006년 10월 9일 월요일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은 혼자 중환자실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카를로 어머니는 병원 건너편 성당에서 새벽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 성당에는 알레산드로 사울리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었는데, 사울리 성인은 카를로 아쿠티스의 2006년 수호천사이기도 했지요.

여기서 잠깐 이탈리아 밀라노의 새해 풍습에 대해 알아봅시다. 밀라노의 성당에서는 해마다 12월 31일이면 ‘성인 뽑기’를 합니다. 여러 성인들의 상본을 바구니 안에 넣고 제비뽑기하듯 하나의 상본을 뽑는 것입니다. 그렇게 뽑힌 성인이 1년 내내 자신을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카를로는 항상 성가정, 예수님, 아니면 성모님 상본을 뽑았습니다. 그래서 카를로 가족은 카를로가 예수님과 특별한 인맥이 있는 것 같다며 놀리곤 했지요. 그런데 2006년을 맞으면서는 카를로가 이탈리아의 성인인 알레산드로 사울리의 상본을 뽑은 것입니다. 사울리 성인은 바르나바회의 주교였으며, 젊은이들의 수호성인입니다.

카를로 어머니가 미사를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왔는데, 잠시 뒤 의사 선생님이 카를로를 살피더니 몬차에 있는 성 제라르도 병원으로 옮겨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병원에는 백혈병 전문 치료센터가 있습니다.



죽음을 예감한 카를로

성 제라르도 병원에 도착했을 때의 일입니다. 간호사들이 구급차에서 카를로를 내리려 할 때 카를로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살아서 못 나가요.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카를로 어머니는 겁이 나기도 했지만, 카를로가 이 병을 꼭 이겨내기를 간절히 바랐고, 카를로가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비록 지푸라기일지언정 꽉 움켜잡는 심정이었습니다. 카를로는 소아혈액종양병동에 입원했습니다.



10월 10일 화요일

카를로는 죽음이 다가왔음을 확신하고 병자성사를 받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병원 원목 신부님이 병실에 찾아와 카를로뿐만 아니라 가족도 성체를 모실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10월 11일 수요일

카를로가 의식을 잃기 바로 전에 머리가 좀 아프다고 했습니다. 카를로는 고통스러워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평온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카를로가 미소를 보이며 두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은 뇌사 판정을 내렸습니다. 2006년 10월 11일 오후 5시 45분이었습니다. 그날은 바로 그해 카를로의 수호천사였던 알레산드로 사울리 성인이 돌아가신 날입니다.

카를로의 부모는 카를로의 장기를 기증하고 싶어 했지만, 병원 측은 백혈병 때문에 이미 장기들이 손상을 입었을 거라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인 10월 12일 오전 6시 45분, 카를로 어머니는 카를로의 심장이 멈추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10월 12일 목요일, 1988년 10월 12일

2019년 여름, 당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홍보국장이었던 전주교구 안봉환 신부님이 로마에서 구매해온 성체 기적 이야기 책을 보여주시며 함께 번역해 보자고 하셔서 저는 그때 처음 카를로 아쿠티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유대감을 느끼며 카를로를 매우 친근하게 여기게 되었지요. 어느 명문대학보다도 가톨릭 학교가 최고라 하시며, 그래서 제가 성심여자대학(현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에 입학한 것을 매우 기뻐하시던 저의 아버지가 출장 중 교통사고로 그해 10월 12일 카를로 성인과 같은 날 급작스럽게 이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11월 위령 성월을 지내며,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세상을 떠난 모든 이에게 평화의 안식을 베풀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