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실존을 향해 나아가는 ‘되어감의 존재’

(가톨릭평화신문)
철학상담은 내담자의 ‘인격적 실존’에 참여하여 그들의 변화와 성장을 돕고자 한다. 대부분의 상담이 그렇지만, 특히 철학상담은 인격적 실존과의 진정성 있는 만남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실존(Existenz)’의 구조와 본질에 대한 철학적 해명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요구된다. 실존에 대한 철학적 이해 없이 내담자의 ‘자유’를 독려하고, 자기 삶의 ‘책임’을 강조하는 철학상담을 제대로 수행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라틴어 ‘existentia’의 번역어인 실존은 어원적으로 고대 그리스어 ‘실체’에 대응한 ‘존재’, 다시 말해 존재의 실재성 혹은 현실성을 뜻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형이상학적 용어인 실존이 인간의 자기 해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게 된 것은 실존철학의 영향이다.

현대 실존철학의 효시로 알려진 키르케고르(1813~1855)는 인간을 실존으로 규정한다. 실존으로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본질적인 ‘무엇’으로 규정하지 않고, 자유롭고 책임 있는 주체로서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실현해가는 ‘어떻게’로 이해한다. 즉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으로 있음’이 아니라 ‘어떻게 있음’이다.

이와 관련해 키르케고르는 인간은 정신으로서 무한과 유한, 영원과 시간, 자유와 필연, 영혼과 육체의 관계를 자기와 관련시키는 종합을 통해 비로소 자기로 실존한다고 주장한다. 실존하는 인간은 개별적인 ‘단독자’로서 매 순간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 진리와 대면하는 존재다. 키르케고르는 주체적 인간의 진리를 향한 내면성의 가장 높은 정열을 ‘신앙’이라 일컫는다.

야스퍼스(1883~1969)는 실존을 역사적 상황 속에서 자기 선택과 자기 결단의 행위를 통해 참된 자기를 실현해 가는 ‘존재 가능’으로 이해한다. 그에게 실존은 심연과 같은 가장 어두운 개념이다. 실존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고유한 것으로서 오로지 한계상황 속에서 자기 존재 가능과 관련하여 초월의 방식으로 자기를 밝힌다. 이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처해있는 한계상황(고통·투쟁·죄책·죽음) 안에서 자기 한계를 부단히 넘어서려는 투쟁을 통해 본래의 자기인 실존으로 도약해 가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한계상황의 체험 없이는 결코 진정한 자기가 될 수 없기에 ‘한계상황을 경험하는 것과 실존하는 것은 동일’하다.

야스퍼스는 이외에도 진정한 실존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자유·이성·(실존적) 소통을 든다. 인간은 무엇보다 자유로운 존재로서 모든 것을 통합하는 궁극적이며 절대적 진리로 ‘하나’(일자)인 초월자와 관계하면서 규정된 세계를 넘어 진정으로 자기 가능 실존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야스퍼스는 이렇게 자유롭게 초월자와 관계함을 실존의 자기 확신에서 오는 ‘철학적 신앙’이라 불렀다. 이는 신학의 계시 신앙과 다르게 오로지 ‘이성’에 근거한 것이다. 이성이야말로 자기 제약 없이 무한히 뻗어 나가는 개방된 초월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즉 이성은 ‘일자를 향한 통일을 무한히 추구하는 충동의 원천’이자 ‘무한한 소통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실존은 이성의 무제약적인 공간 안에서 초월자와 관계하면서 진정한 자기가 되기 위한 실존적 소통을 하게 된다.

실존으로서 인간은 결코 이미 규정된 ‘됨의 존재’가 아니라 자기 가능 실존을 향해 나아가는 ‘되어감의 존재’이다. 이는 우리가 부단히 자기가 되고자 노력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