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을 주제로 한 클래식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76)
(가톨릭평화신문)
무릇 인권이란 인간으로서 마땅히 주장할 수 있는 기본 권리를 말한다. 그러나 거친 말들이 난무하는 요즘 세상에서는 오히려 사람의 존엄성이 점점 축소되는 듯하다.
인권은 결국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가치다. 단군이 이 나라를 세울 때 내세웠던 ‘홍익인간(弘益人間)’ 이념도, 백성을 위한 정치라는 왕조들의 기본 원리도 결국 인간의 존엄이 지향점이었다. 인권을 가장 크게 해치는 무기 중 하나는 ‘선민사상’이다. 자신이 남들과 다르며 특별히 선택받은 존재라고 여기는 순간,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배제하고 혐오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귀가 따갑도록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 선민의식을 버리고, 사상과 배경을 넘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나와 생각·지위·배경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인권의 가치를 가장 분명하고 확실하게 드러내는 길이다. 주님의 자녀로서 인권을 무시하는 것은 곧 주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임을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한다.
클래식 음악에도 인권을 주제로 한 작품이 적지 않다.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은 1940년 완성한 ‘진혼 교향곡(Sinfonia da Requiem)’을 통해 전쟁과 폭력, 인권 침해에 반대하는 자신의 입장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이 작품은 원래 일본 정부가 기념행사를 위해 위촉한 곡이었으나, 브리튼의 메시지가 불편했던 일본 정부는 ‘비정치적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한국과 중국의 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던 일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의 불순함이 이미 드러났다고도 볼 수 있다. 지금 이 작품은 유엔 인권 관련 행사에서 자주 연주된다. 종종 같은 작곡가의 ‘전쟁 레퀴엠’과 혼동되지만, 두 작품은 전혀 다른 곡이다. 20분 남짓의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곡가가 직접 지휘한 ‘진혼 교향곡’
//youtu.be/5OTM8ExrMZU?si=kP_mFBwvEighFEWB
칼 젠킨스가 2000년에 작곡한 ‘무장한 인간 : 평화를 위한 미사(The Armed Man: A Mass for Peace)’는 전 세계 인권 추모식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품 중 하나다. 내전·학살·억압을 향한 비판과 함께 평화와 인권을 옹호하는 메시지가 중심에 있다. 작품은 군대의 행진 소리가 들리는 웅장한 도입부로 청중을 압도한다.
작곡가가 직접 지휘한 ‘무장한 인간: 평화를 위한 미사’
//youtu.be/rtl2TqZ-Cm0?si=84qlQ5RUfjGC8a7g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명확하고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들 수 있다. 니체의 동명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 작품은 인간 존재의 이유와 부조리, 억압을 넘어 새로운 인류로 나아가는 희망을 음악적으로 형상화한다. 특히 도입부는 거의 모든 이들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큼 유명하며,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마리스 얀손스가 지휘하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youtu.be/o9qVSXUU7Hw?si=QsJMpCrD4MhdXm4A
작곡가 류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