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나는 성령께 어떤 은사와 열매를 받았을까

(가톨릭평화신문)


교회 전례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을 기념하여 모든 천주교 신자가 의무적으로 미사에 참여해야 하는 날을 ‘의무 기념일’이라고 한다. 천주의 성모마리아 대축일, 주님 부활 대축일, 성모 승천 대축일, 주님 성탄 대축일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축일들이 있는데, 그중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는 날 사도들에게 성령이 내려오신 날을 기념하는 성령 강림 대축일이 있고, 그 다음 날부터 연중 시기로 지낸다.

성령 강림 대축일에는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와(성령칠은) 아홉 가지 열매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성령칠은에는 하느님 뜻에 따라 살 수 있는 지혜(슬기), 하느님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이해(깨달음), 영원한 삶을 위해 믿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별하는 지식(앎),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과 처신을 할 수 있도록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의견(분별), 하느님을 부모님처럼 공경하고 자녀로서 사랑과 효성·흠숭을 다하는 효경(공경), 혹여 하느님 뜻을 거스르고 마음을 아프게 해드릴까 하는 두려움(경외심), 현재의 어려움으로부터 신앙생활의 장애를 극복하는 굳셈(용기)이 있다. 성령의 능력을 통해 맺는 아홉 가지 열매에는 사랑·기쁨·평화·인내·친절·온유·착함·성실·절제 등이 있다.

많은 성당에서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 중 성령카드를 뽑는 행사(?)를 한다. ‘올해 나는 어떤 은사를 받을까?’하는 기대와 설렘으로 카드를 뽑고 은사를 확인한다. 어떤 신자는 너무 마음에 드는 카드를 뽑았다며 좋아하기도 하고, 또 어떤 신자는 본인이 뽑은 카드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실망하기도 한다. 어떤 카드를 뽑든 신자들은 대부분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나에게 이런 은사가 부족하구나”하고 생각하거나, “나한테 이 은사는 어느 정도 있는 거 같은데 또 주셨네?”라고 말이다.

나는 2년 연속 ‘지식(앎)’의 은사카드를 뽑은 적도 있다. ‘나는 지식의 은사가 부족하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생각이 그때뿐이라는 것이다. 어떤 은사카드를 뽑았을 때 “이 은사가 부족하구나”라고 느꼈다면 그 은사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충분한 것 같은데 또 주셨네”라고 느낀다면 그 은사를 나의 달란트로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신자들은 미사를 마치고 성당을 나서는 순간 내가 뽑은 은사를 다 잊어버리기 일쑤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2년 연속 같은 은사카드를 뽑았지만, 그 은사를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거나, 그 은사를 나의 달란트로 활용해 본 기억은 없다. 그렇기에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의 맛을 느끼지도 못했던 것 같다.

천주교 신자들은 누구나 성령의 은사, 특히 본인이 바라는 은사를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대부분 그 은사를 받았는지 아닌지 알지 못하거나, 설령 받았다고 생각하더라도 그 은사를 통해 성령의 열매를 맛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많은 사람에게 있어 어쩌면 실생활에서 얻고자 하는 궁극적 목표이기도 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들은 나에게 주어진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를 통해 끊임없이 노력할 때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성령 강림 대축일에 받은 나의 은사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모든 신자가 열심히 노력해 다음 부활절이 끝날 때에는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한 가지라도 맛볼 수 있길 기원한다.

“저마다 받은 은사에 따라, 하느님의 다양한 은총이 훌륭한 관리자로서 서로를 위하여 봉사하십시오.”(1베드 4,10)

 


김기형 요셉 (공학박사, 인천환경공단 청라사업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