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를 1년 앞두고 한국 교회 전체가 본격적으로 2027 서울 WYD를 향해 매진해야 할 시기다. 반면 우리 사회는 저출산을 비롯한 인구통계학적 위기와 사회 전반에 확산한 불신 등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여러 상황 속에 광주대교구는 올해 ‘소통하는 공동체’, ‘청년과 함께하는 미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 ‘생태 환경을 살리는 교회’를 지향하며 시노달리타스를 정착시키기 위한 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본지는 새해를 맞아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를 만나 신앙인과 시민에게 전하는 위로와 당부, 그리고 교회가 먼저 신뢰와 연대의 길을 향해 걸어야 하는 당위성에 관해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리=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가 본지와의 대담에서 질문에 답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2025년 교회는 희년을 지냈지만, 우리 사회는 다사다난했습니다. 지난 한 해를 정리해 보신다면요.
나라 안팎으로 큰 일들이 많았습니다. 새 대통령을 맞이했고 우리는 새 교황님을 맞이했습니다. 여기에 역할을 해줘야 할 분들이 못하고 있을 때, 시민들이 길에서 외침으로 사회 변화를 위해 노력했고 이를 응원하고 기도하면서 한 해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새해를 보내야 할까요.
희년의 삶은 성경에서 표현하는 것처럼 묶인 것을 풀어주고 새 출발을 하는 때입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하느님 안에서 화해하고 새롭게 주님 은총을 받는 해죠. 마음속에 미운 사람이든 마음의 짐이든 주님께 맡겨드리고 나는 주님 뜻대로 용서하고 내 갈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새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해 11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한일주교교류모임에 함께하셨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히로시마 원폭이 투하된 그 장소에 조선인들을 위한 기념탑이 있습니다. 2만여 명의 희생자들을 기념하는 탑인데, 그 앞에서 저희 주교단이 기도하고 노래도 불러드렸습니다. 고향을 얼마나 그리워하시다가 여기서 희생당하셨을까 생각하면서 ‘고향의 봄’을 노래하고, 영혼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원폭 투하 이후 수많은 조선인 희생자들, 부상자들은 일본에서 어떠한 혜택도 받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분들의 삶을 함께 생각하면서 한일주교교류모임을 통해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바닷속 탄광에서 목숨을 잃은 조선인 노동자들도 추모하셨습니다.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연안의 조세이(長生, 장생) 탄광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이 많이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그분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데 민간단체 한 곳이 애쓰고 계시더라고요. 그리고 자원봉사하는 잠수사들이 유해 발굴을 돕고 있는데 경제적으로 많이 어렵다고 해서 우리 한국 주교단이 이를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역사를 기억하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려는 선순환이 한일 외교 무대에서도 이어질 수 있을까요.
먼저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일주교교류모임 미사 강론 중에 히로시마교구 교구장 주교님이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뭉클했습니다. 한일주교교류모임을 통해 주교님들 안에서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겨났음을 느꼈습니다.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가 2025년 5월 7일 광주 살레시오여중·고에서 학생들과 부활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며 성체를 분배하고 있다. 광주대교구 홍보실 제공
올해 교구장 사목서한 주제로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이사 6,8)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이번 사목서한에는 제가 교구장이 되기 전부터 ‘하느님 백성의 대화’ 모임을 통해 식별한 네 개의 큰 기둥을 세웠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 △청소년들이 찾아올 수 있는 교회 △생태환경을 살리는 교회 △모든 계층과 소통하는 교회입니다. 올해는 특별히 ‘소통’과 ‘세계청년대회 준비를 위한 환대의 자세’를 강조했습니다. 누군가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이죠. “주님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주십시오”라는 마음으로 각자가 먼저 실천하자는 의미입니다.
사목서한에서 ‘소통하는 공동체’와 ‘청년과 함께하는 미래’를 특별히 강조하셨습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때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다른 문화권 젊은이들이 우리 교회를 찾아올 것입니다. 문화와 문화가 만나고 그 중심엔 예수님이 계신 거죠. 그래서 내 안에 있는 예수님을 그들에게 소개하고 그들이 모시고 온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세계청년대회를 잘 준비하는 한 해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가 2025년 11월 8일 교구청 성당에서 봉헌한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광주대교구대회 발대미사'에서 한 학생으로부터 십자가 조각을 전달받고 있다. 광주대교구 홍보실 제공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가 2025년 9월 13일 주한 교황대사 조반니 가스파리 대주교와 함께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광주대교구 홍보실 제공
광주대교구는 어떤 지향으로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교구대회를 준비하고 계신지요.
우리 교구를 방문하는 청년들에게 우리의 어떤 특별한 모습을 전할까 고민했습니다. 그 답은 민주주의, 바로 ‘K-민주주의’입니다.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 피땀을 흘려 지금의 민주주의를 만들었는지 전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같이 5·18 동영상을 보며 나눔의 시간을 가질 것이고, 5·18 묘원을 참배하는 기회도 마련할 것입니다. 또 광주대교구 담양 묘원에는 이태석 신부님이 잠들어 계십니다.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담은 영화 ‘울지마 톤즈’, ‘부활’을 시청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세계 젊은이들과 선교 정신을 함께 함양하고자 합니다. 시노달리타스는 결국 선교 아니겠습니까? 교구대회가 복음을 전하는 정신을 배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땐 레오 14세 교황도 방한하십니다. 교황 방한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까요.
지구촌 모든 사람은 평화를 갈구합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평화를 향한 염원이 모인다면 틀림없이 평화의 노선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평화의 사도’이신 교황님이 오신다면 평화를 향한 성령의 바람이 불지 않을까 희망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에서 가장 우려하시는 점은 무엇인가요.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이 커졌습니다. 예전엔 판사들이 판결을 내리면 ‘그 죄에 맞는 판결을 내렸겠지’라고 믿었지만, 요즘 시대에는 이에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상황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회 구성원들 서로 간의 불신, 특정 직분에 대한 불신들이 동시에 커지는 것 같아 염려됩니다. 각자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내야 하는데, 그런 모습들이 약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듭니다.
12·3 비상계엄 이후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언해주신다면요.
사필귀정(事必歸正), 올바름으로 나아갈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은 더디 가죠. 하지만 비록 천천히 가더라도 바르게만 간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주인 의식을 지니고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주인이 된다는 것은 힘든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각자가 주인 의식을 갖고 힘들지만 지치지 말고 끝까지 해야 할 바를 하는 것, 그것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집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 위험한 일에 노출된 노동자, 미래를 위협하는 기후위기까지. 오늘날 여러 어려움에 처한 이들과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교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요.
청년들을 만날 때마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구체화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줍니다. 그 다음에는 성실하게 하나하나씩 해나가야 합니다. 저는 하바쿡서 2장 4절을 좋아합니다.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는 말씀이죠. 그런데 우리 사회는 쉽게 뭔가를 얻으려고 합니다. 기후 문제도 그렇고 인구 정책도 그렇고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당장의 성과보다 지속해서 청년들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에서 시작해 이를 연구하고 토론해 나가야 합니다. 그 속에서 교회 신자들과 정치·사회인, 경제인들은 각자 역할을 다한다면 길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주님을 따르고자 성소의 뜻을 가진 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무거운 돌을 들어서 딱 한 번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평생 그 무거운 돌을 들고 있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너무 쉬운 것을 좋아해요. 쉽게 얻는 것은 쉽게 잊힙니다. 반면 오랫동안 기억되는 것은 주로 힘들었던 시간입니다. 성소를 지닌 사람이라면 예수님께서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던 그 말씀을 기억하면서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제들에게 초심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제가 사제가 막 됐을 때 신자들에게 책에서 읽었던 이야기를 한 적 있습니다. ‘커피는 사랑처럼 쓰고 마귀처럼 새카맣고 지옥처럼 뜨겁다. 그런데 사람들은 설탕을 넣어 달게 하고 크림을 넣어 흐리게 하고 후후 불어 식혀 마신다.’ 저는 사제가 됐을 때 그리스도의 향기를 간직하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 그 마음 그대로 사제로 서품을 받으면서 제대 앞에서 부복(俯伏)했을 때의 그 마음을 지켜가는 거죠. 하느님 백성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그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구 전체를 위해 사목하시다 보면 다양한 문제도 마주하십니다. 그때마다 어떤 기도를 하시는지요.
하느님께 담대함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문제와 사건을 직면했을 때 일희일비하지 않고 이것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우왕좌왕하지 않으면서 하느님께서 뜻하신 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새해 신자들과 국민들에게 덕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세상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모두 평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면서 이웃에게 먼저 손 내밀고 먼저 인사하면서 작은 평화, 내 마음의 평화를 이뤘으면 좋겠습니다. 평화가 가득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