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 기법에서 이성은 물음을 이끄는 원리

(가톨릭평화신문)

초월 기법에서 감성이 물음을 촉발하는 계기라면, 이성은 물음을 이끄는 원리가 된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겪을 때 이성적으로 물음을 던지는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다. 물론 이성적 물음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우선 감정의 격정에서 빠져나와야만 한다. 격한 감정은 우리의 판단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성적 물음을 통해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일단 나에게 일어난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이 나에게 주는 의미이다. 이런 이해 과정이 없다면, 우리는 그 어떤 의미 있는 행동도 할 수 없을 것이며, 상처의 치유도 불가능할 것이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가 자주 듣는 말은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이성이란 무엇인가? 이성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 단어 ‘누스’(νο?ς)와 ‘로고스’(λ?γος)에 뿌리를 두고 있다. ‘누스’에서 라틴어 ‘스삐리뚜스’(spiritus) ‘인뗄렉뚜스’(intellectus) ‘멘스’(mens), 그리고 ‘로고스’에서 라틴어 ‘라찌오’(ratio) ‘베르붐’(verbum)이 각각 파생됐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이성은 ‘로고스’ 및 ‘라찌오’에 상응한 개념으로서 그 의미가 한정적이다. ‘누스’가 전체를 포착하려는 인간 정신의 포괄적인 직관력과 관련이 있다면, ‘로고스’는 더 구체적으로 비례적 관계의 분별 및 논리적 추론과 관련이 있다. 라틴어 ‘라찌오’ 역시 비례 관계를 따져 사물의 이치를 파악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말한다.

초월 기법에서 이성적 물음의 일차적 목적은 당면한 문제를 이치에 맞게 원인 관계를 따져 논리적이며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데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의 긍정적 해석의 가능성과 의미 있음을 타진하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편견 없이 어떻게 사건(사태)의 본질에 접근하는가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판단중지’를 통해 사태의 본질에 접근하는 후설의 현상학적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우리가 충만한 의미에로 나아가려 할 때 항상 걸림돌이 되는 것은 고정된 관념과 이념이다. 이런 생각은 사태가 그에 상응한 본질을 이미 갖고 있다는 우리의 성급한 판단에서 비롯된다. 바로 이것이 후설이 강조하는 판단중지이다. 후설은 성급한 판단을 중지하고, 현상의 배후에 있는 본질 직관에 이르는 길을 현상학적 환원의 초월적 방법을 통해 밝히려 했다. 여기서 초월 기법을 위해 중요한 것은 의미가 바로 우리 의식의 지향적 작용을 통해 자유롭게 발현된다는 사실이다. 즉 의미 부여의 주체는 밖에 있지 않으며,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초월 기법의 이성적 물음의 단계에서 ‘의미’만큼 중요한 것은 ‘이해’이다. 그런데 우리의 이해는 철학적·해석학적 통찰에 의하면 항상 ‘이해 지평’에서 수행된다. 이해 지평은 인식의 차원에서 ‘선지식’(선이해)에 해당하며, 구조적으로 이해의 기반이 되는 다양한 세계를 의미한다. 이는 경험적인 주변 세계이자 우리가 거기서 살아가는 생활 세계이며, 전승된 전통이자 세계 그 자체이다. 이때 주목해야 할 것은 이해가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을 우리에게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이해의 확장이야말로 ‘더 큰 실재(實在)’로 나아감이자 바로 치유에 이르는 길이다.  <다음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