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의 기쁨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81)
(가톨릭평화신문)
오늘은 주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죄 없이 나신 주님이 굳이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보통 세 가지로 해석된다. 첫째는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공식적으로 시작하심을 알리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죄인들 사이에서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인간의 삶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우리와 하나가 되심을 선포하기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세례의 순간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모습으로 내려왔으며,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하느님 음성이 들렸으므로, 이 세례는 성부·성자·성령 삼위가 함께 드러나는 순간이 된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는 훗날 성령 안에서 받는 ‘그리스도인 세례’의 기원이 되었다. 가톨릭에서 ‘세례’를 ‘영세’라고도 하는데, ‘세례를 받는다’는 뜻으로 같은 말이다. ‘세례’는 ‘물에 잠그다, 씻다’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으며, 가톨릭에서는 이를 의식으로 간주해 ‘세례성사’라 부른다. 주님 세례 축일은 성탄절기의 마지막이며, 이 축일이 끝나면 연중 시기가 시작된다.
예수님께 세례를 드린 사람을 특별히 ‘세례자 요한(John the Baptist)’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의 사명과 활동의 핵심이 바로 ‘세례를 베푸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요르단강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며 회개를 촉구하고, 이를 통해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하도록 이끌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가 세례를 행한 것은 이사야가 예언한 “주님의 길을 닦아라”라는 말씀을 실현한 것이기도 하다.
세례자 요한은 당시 실제로 매우 주목받는 정치적 인물이었으며, 그를 따르는 이가 많아 늘 골칫거리로 여겨졌다. 최후 또한 비참했는데, 이는 그가 당시 왕이던 헤로데가 형제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한 것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헤로데는 요한을 가두고서도 종종 그를 찾아와 그의 말을 들었다고 하니, 세례자 요한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는 의붓아버지 헤로데 앞에서 춤을 추고 소원으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요구했다.
독일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자신의 오페라 ‘살로메’에서 이 사건을 극적으로 다루며, 살로메가 요한의 목을 받기 위해 추는 ‘일곱 베일의 춤’을 작곡했다. 이 곡 때문에 이 오페라는 전 세계 소프라노에게 악몽이 되었다. 이 정도 규모의 오페라를 소화할 수 있는 소프라노들은 대체로 드라마티코(Soprano Drammatico)로, 묵직하고 강한 음색, 넓은 성량과 힘, 격정적인 감정 표현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발성에는 상당한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연주 속에서도 목소리가 묻히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육중한 체격의 이들이 일곱 베일의 춤을 추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세례의 기쁨을 표현한 작품들은 클래식 음악에서 자주 다뤄지는 주제다. 그중에서도 한국인이 특히 사랑하는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합창곡을 들어보자. 피아노 협주곡 같은 기악곡으로 유명하지만, 그의 음악의 본령은 오히려 성악 작품에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오페라와 합창곡들은 놀라울 만큼 경이롭고 신선하다. 성 세르게이 찬가 중 ‘성모송(Bogoroditse Devo)’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MDR이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의 ‘성모송’
//youtu.be/xW0QbUC0cEU?si=o4n5aoufYk3jxKpV
작곡가 류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