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돋보기] 침묵 속에서 지킨 마지막 약속

(가톨릭평화신문)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2월 28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렸다. 참사로 세상을 떠난 첼리스트 고 박예원씨의 동료들이 박씨의 1주기를 맞아 추모 공연을 마련한 것이다. 오케스트라 맨 앞줄 첼리스트 의자에는 박씨의 영정 사진이 놓였다. 두 명의 연주자는 생전 박씨가 입었던 흰색·자주색 공연복을 입고 연주에 임했다. 동료들은 박씨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자작곡 ‘안녕’을 연주하고 눈물 속에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잠시 음악으로 채워졌던 공항은 공연이 끝나자 다시 깊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무안공항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입구부터 물씬 풍기던 향내는 사라졌고, 한때 봉사자와 추모객·취재진으로 가득했던 로비는 고요함만 감돌았다. 1년 전의 뜨거웠던 추모 열기를 떠올리는 것은 하나하나 비닐로 포장돼 ‘추모의 계단’에 전시된 추모 메시지들뿐이었다.

유족들은 여전히 시간과 싸우고 있다. 고재승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 협의회 이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만 늘고 있다”며 “유족들이 오히려 죄를 지은 것처럼 느끼게 되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겉으로는 참사 관계자들이 입건되는 등 문제가 잘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사고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구체적으로 책임을 지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다”고 울분을 삼켰다.

시간이 지나며 침묵이 덮인 공항에서 교회는 기도와 연대를 통해 이 비극을 잊지 않겠다는 마지막 약속을 지키고 있었다. 광주대교구 무안본당을 비롯한 공항 인근 본당들은 매주 토요일마다 돌아가며 공항에서 추모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1년 전 추위에 지친 이들의 몸과 마음을 녹였던 가톨릭광주사회복지회의 작은 커피차도 사회의 차가운 시선에 지친 유가족의 마음을 따뜻이 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