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해도 기특한 받아쓰기
(가톨릭평화신문)
첫째 아이의 이번 방학 목표는 글쓰기이다. 3월이면 녀석도 이제 중학생이 되건만 아직 힘주어 연필을 쥐지 못한다. 글은 더듬더듬 읽는 것 같은데 뭘 길게 쓴 걸 본 적 없다. 비장애인 아이라면 초등학교 1학년에 떼어버렸을 받아쓰기 공책을 펴고 연습을 시작했다. 녀석은 구불구불 삐뚤빼뚤 느릿느릿 글자를 적는다. 사과·포도·엄마·치약?. 그걸 받아쓰는 아이의 굽은 등이 여간 불편해 보이는 게 아니다. 하기 싫다는 눈치가 다분하다.
나 또한 받아쓰기가 달갑지 않았다. 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니 30년도 훌쩍 넘게 지난 일이다. 받아쓰기 시험을 보면 대체로 80점이나 90점이었는데 어떤 날은 터무니없이 많이 틀리기도 했다. 30점짜리 시험지를 받은 날이었다. 평소에는 집에 글자를 모르는 할머니뿐이어서 걱정이 없었는데, 그날은 집에 엄마·아빠·삼촌들까지 다 오는 날이었다. 나는 집에 다 와서 30점짜리 시험지를 꼬깃꼬깃 접어 던져버렸다. 그러고는 받아쓰기 같은 건 없었다는 듯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막내 삼촌이 “너 이거 집 앞에 버렸지?” 하며 빙긋 웃는 것이다. 그의 손에는 정말 내가 버린 시험지가 들려 있었다. 우수수 비가 오는 시험지가. 세 문제 맞고, 일곱 문제 틀린 그것이. 삼촌은 대체 그걸 어디서 주워온 걸까? 귀신이 있다면 소리 높여 곡할 노릇이었다.
어른들은 꼬맹이를 놀리느라 껄껄 웃고 말았지만 나는 적지 않게 창피스러웠다. 엄마는 그날 이후 주말마다 한글 특훈에 돌입했다. 그 시절 여덟 살이던 나의 뒷모습도 딸아이와 비슷했을 것 같다.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어린이의 등이란, 시절과 공간을 막론하고 비슷하기 마련이니까. 아이는 그간의 감각 치료와 인지 발달 치료가 무색하게 손가락을 세심하게 다루지 못한다. 연필을 잡은 손에 힘이 없으니, 필체가 바를 리 없다. 아니 필체 이전에 말과 글을 잘 이해하는지 모르겠다. 말하기·읽기·쓰기로 이루어지는 국어 교육 과정에서 아이는 아직 말하기 단계조차 제대로 건너지 못했다. 그런데 읽고 쓰는 게 가당한가? 이럴 때 교육 전문가라도 찾고 싶지만, 세상에는 온통 입시 전문가뿐이다. 일타 강사만 보인다. 그들에게 내가 무엇을 묻고 의지하겠는가?
아이는 방금 사과 열 번 쓰기를 완수했다. 끙끙 앓으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끝내 썼다. 사각형 그득한 공책을 보니 그 안의 글자가 점점 괜찮아진다. 처음 쓴 것과 마지막 쓴 것은 꽤 차이가 난다. “와, 사과를 참 예쁘게 썼구나!” 칭찬하니 역시 방긋 웃는다. 사과처럼 예쁜 얼굴이다. ‘얘야, 다시 집중하렴, 이제 포도를 쓸 차례야?’ 하는 말을 속으로 삼킨다.
공부시키고 싶은 마음은 장애 아동의 부모나 비장애 아동의 부모나 이토록 매한가지다. 그게 참 우스워서 괜히 포도, 포도, 포도 읊조려 본다. 아이는 사과보다는 포도를 더 쉽게 쓰는 것 같다. 포도를 먼저 쓰게 할 걸 그랬다. 나는 아이가 포도를 다 쓰길 기다렸다. 다음 단어를 생각하면서, 아이의 다음 시간을 떠올리면서.
서효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