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말기 돌봄 상상해야

(가톨릭평화신문)
구글 제미나이 제작


죽음은 당사자만의 서사가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의 서사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은 연결된 하나의 계통이며
죽음까지가 삶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별스러운 것이 아니다.



어느 날 부모님 집에 가니 ‘호스피스 병동’이라고 새겨진 손톱깎이 세트가 놓여있었다. 흔히 볼 수 없는 문구여서 엄마에게 이게 뭐냐고 물으니, 지난 진료 때 병원 로비에서 OX 퀴즈 후 받았다고 했다. 정답·오답에 관계없이 선물을 주더라면서. 퀴즈는 이것이었다. “호스피스 병원은 병을 치료하는 곳이다.” 아마 호스피스 완화의료 서비스 알리기 캠페인 중이었던 것 같다. 엄마와 아빠가 정답을 골랐는지 오답을 골랐는지는 묻지 못했다.

책 「나는 평온하게 죽고 싶습니다」는 의료인류학자 송병기와 호스피스 의사 김호성이 쓴 책이다. 책은 두 저자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전문가들인 만큼 사용하는 단어가 매우 정갈하다. 섬세하고 진중한 글은 말기 돌봄과 죽음에 대해 숙고할 기회와 함께 마땅히 알아야 할 지식과 정보도 제공해 주었다.

책은 다음의 순서로 진행된다. 먼저 ‘공간’과 ‘음식’, 다음은 ‘말기 진단’과 ‘증상’, 마지막은 ‘돌봄’과 ‘애도’다. 환자의 죽음이 현실화되는 공간인 호스피스 병동을 시작으로 남겨진 자들의 애도까지, 죽음의 서사를 고민한 매우 사려 깊은 책이다.

먼저 공간을 말한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위한 공간이다. 거기에는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종교인·보조활동 인력 등 전문가로 구성된 다학제팀이 함께한다. 다학제팀 팀원들은 말기 돌봄에서 환자가 삶의 서사를 구성하도록 돕는 것에 큰 가치를 둔다고 한다. 내가 처음 접해보는 진취적 말기 돌봄이었다. 호스피스라고 하면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의 환자가 임종 전 들어가는 곳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호스피스는 통증의 완화와 돌봄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죽음으로 가는 중인 환자가 고유의 서사를 갖도록 도와주는 곳. 전망 좋은 방, 커피 향 나는 카페, 산책 코스 등 모든 공간에 세심한 배려가 녹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일상이 존재하는 공간들은 사용자들에게 죽음은 별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죽음도 삶의 일부이므로 다 지나가고 다 겪는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그리고 음식이다. 저자 송병기는 영양의 차원을 떠나 입맛의 차원에서 음식에 대해 말한다. 돌아가신 시어머니는 요양병원에 계실 때 한 달에 한 번 외래 진료를 나왔는데 병원 앞 중국집에서 짜장면 한 그릇을 아주 달게 드시곤 했다. 그럴 때면 밀가루 음식은 소화도 잘 안 되는데 저걸 다 드시나 걱정스럽다가도, 한 달 내내 먹는 병원 밥이 얼마나 심심했을까 싶어 금세 측은해졌다. 더군다나 당뇨 환자인 어머니에게 병원 영양사는 덜 달고 덜 짠 음식만을 줄곧 제공했을 것이다. 외부 간식 반입도 금지되어, 우리는 면회 갈 때 귤 하나 사 들고 가지 못한 지 오래였다.

그런데 가끔 생각한다. 2주 또는 3주에 한 번, 곶감 하나 도넛 하나 먹는 게 진짜 안 되는 일이었을까? 그 생각이 이제야 든다. 물론 병원에서 음식의 목적은 병의 치유다. 나으려면 먹어야 하고 낫기 위해 먹는다. 병원의 모든 것은 병의 치유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병원에서 누군가가 순전히 나의 입맛을 고려해 음식을 준다면 정녕 환자의 자리를 넘어서 인간으로서 보살핌을 받는 느낌이지 않을까.

그리고 통증이다. 책에는 줄곧 ‘암성 환자’, ‘비암성 환자’라는 용어가 나온다. 현재 한국에서 운영 중인 호스피스 병원은 대부분 말기 암 환자에 국한되어 입원이 가능하다. 그 결과 한국 호스피스의 평균 재원 기간은 3주라고 했다. 중위수는 그보다 짧은 2주. 즉 고통이 매우 심하고 여명이 매우 짧은 환자여야 한다.

책의 분류에 의하면 비암성 환자였던 시어머니는 생의 마지막을 1년 넘게 요양병원에서 보냈는데, 입소 당시 진단명은 ‘원인 불명 전신 통증’이었다. 어머니는 입소 전까지 수시로 구급차를 탔다. 입원 직후 의료진은 먹는 약, 맞는 주사, 붙이는 패치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통증을 경감시키기 시작했다. 진통제의 양은 때에 따라 가감되었지만 어쨌든 어머니는 아프지 않아 살 만하다고 했다. 그리고 통증으로 당황스럽게 성정이 달라지던 어머니가 드라마틱하게 본래의 내 어머니로 돌아왔다. 나는 그때 생의 마지막에 있어 통증 관리의 가치를 실감했다.

책을 다 읽은 후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죽음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저자 김호성의 선언 같은 말이었다. 죽음은 당사자만의 서사가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의 서사이기도 하다. 말기 돌봄, 죽음, 그리고 애도는 가족 전체가 함께 겪는다. 시어머니의 죽음으로 생애 처음 남겨진 자가 된 나는, 나중에 나의 사랑하는 누군가를 남겨놓고 떠나는 자가 될 것이다. 나는 내 가족도 나도 평온하게 죽기를 원한다. 삶과 죽음은 연결된 하나의 계통이며 죽음까지가 삶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별스러운 것이 아니다. 노년과 죽음에 대한 이해를 거기서부터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