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화약고’ 시리아에서 17년간 교황대사 제나리 추기경 은퇴

(가톨릭평화신문)


2008년부터 17년간 시리아 다마스쿠스 주재 교황대사로 일하며 내전과 테러, 빈곤과 제재, 그리고 지진으로 고통받는 시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의 기쁨과 교회의 연대·위로를 전하고자 힘써온 마리오 제나리(80) 추기경이 2일 교황대사직에서 물러났다.

제나리 추기경은 1946년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태어나 1970년 베로나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1980년부터 교황청 외교관으로 일하기 시작해 세네갈과 라이베리아·콜롬비아·독일·루마니아 등에서 교황청 외교관으로 활동했으며, 199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를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에서 교황청 상임 옵서버를 역임했다. 1999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으로부터 코트디부아르·니제르·부르키나파소 주재 교황대사로 임명됐고 2004년 스리랑카 주재 교황대사를 거쳐 2008년 시리아 주재 교황대사로 임명됐다. 2025년 레오 14세 교황의 즉위 미사에서는 추기경단을 대표해 교황에게 팔리움을 전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제나리 추기경이 처음 도착했던 2008년 당시 시리아는 오늘날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2011년 발생한 내전은 모든 것을 바꿔놨다. 봉기와 무력 충돌, 국제사회의 개입 속에 시리아는 오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IS(이슬람 국가)의 등장과 학살, 폭격과 난민 사태가 이어지며, 수많은 이가 삶의 터전을 잃었고, 2023년 시리아 북부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삶의 기반마저 송두리째 잃어버린 이들이 속출했다.

제나리 추기경은 이 모든 시간 동안 다마스쿠스에 머물며 단순한 외교 임무 수행을 넘어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중재 활동과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인도주의 지원에 힘썼다. 제나리 추기경은 당시 시리아 상황을 “인도주의적 재앙”으로 규정하며 이를 용인하는 국제사회의 무관심을 지적하고 “희망을 잃어가는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다. 2023년 지진 당시 연료를 구하기 힘든 이들을 위해 경유를 드럼통에 채워넣고 다마스쿠스에서 알레포로 달려가 이재민들을 돌보기도 했다.

 
마리오 제나리(오른쪽) 추기경이 2023년 9월 미국 뉴욕에서 아미나 모하메드 유엔 사무차장과 악수하고 있다. OSV


제나리 추기경은 혼란에 빠진 시리아에 머물며 평화를 전하는 외교 활동에 앞장서온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추기경에 서임됐다. 현직 교황 외교관을 추기경으로 서임하지 않았던 관례를 깬 결정이었다. 당시 제나리 추기경은 교황의 결정에 대해 “이는 순교한 시리아 국민을 향한 교황님의 사랑 표현이자 외교적 노력을 지지하는 뜻을 전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제나리 추기경이 은퇴 나이를 한참 넘긴 80세까지 교황대사로 활동한 것 역시 전임 교황의 결정을 따른 것이다. 2021년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만 75세가 된 제나리 추기경의 은퇴 요청을 만류하며 계속 시리아 주재 교황대사로 활동해 달라는 뜻을 전한 것이다. 제나리 추기경은 당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시리아에서 전쟁이 발생한 이후 다른 지역에서 다른 일을 하리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이 임무는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특권’과도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