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문서」 제1부는 부활 아침의 세 제자 곧 마리아 막달레나,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 그리고 시몬 베드로에게서 시작한다.(요한 20,1-2 참조) 제자들은 혼자서는 온전히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없다. 그들은 서로 기대고 협력할 때 부활하신 주님을 증언할 수 있다. 이 상호 의존을 「최종 문서」는 ‘시노달리타스의 심장’이라고 부른다.(「최종 문서」 13항) 이를 위해서는 교회 안에서 서로 다른 소명과 은사, 직무 사이에서의 상호 존중과 겸손이 필요하다.
시노달리타스는 개인주의적 신앙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적 삶을 본질로 한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구원하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의 백성을 이뤄 당신을 섬기도록 하셨기 때문이다.(「교회 헌장」 9항) 하느님 백성은 시노달리타스와 사명의 역사적 주체로서, 함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증언한다. 세상은 사람들을 그의 지위나 역할로 구분하지만, 하느님 안에서는 세례받은 모든 이가 동등한 존엄성을 갖는다.
과거에는 교회를 교황, 주교, 사제, 평신도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구조로 이해한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하느님 백성의 정체성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에서 흘러나오고(「최종 문서」 15항), 성품 직무와 교계 제도는 그 토대 위에서 이 백성에 봉사하기 위해 세워졌다.
하느님 백성은 성당의 울타리 안에서만 신앙생활을 영위하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 안에서 그리고 역사 안에서 모든 민족, 다른 종교와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복음을 증언하는 역사적이고 공동체적인 주체들이다.(17항) 그리고 그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단순한 시혜의 대상자가 아니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고통받으시는 그리스도의 얼굴과 육신을 만난다.(19항) 교회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 가난하게 되도록 부름받았으며, 그들을 복음화의 주역으로 여기고 그들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
구성원 모두 동등한 존엄 지녀
교계 제도는 봉사를 위한 토대
세례 때 받은 성령 덕분에 신자들은 복잡한 신학을 몰라도 하느님의 뜻과 진리를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능력, 곧 ‘신앙 감각’을 갖는다.(22항) 하느님 백성 전체가 신앙과 도덕에 대해 동의할 때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확신은 시노달리타스의 중요한 전제다. 이것은 이번 시노드 과정에서 나타난 것처럼 교회의 삶에서 가능한 많은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이유가 된다. 성령께서 그들을 통해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세례에서 시작해 견진과 성체성사로 이어지는 ‘그리스도교 입문’의 여정은 시노달리타스를 배우는 첫 번째 학교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교회의 지체들은 함께 걷는 법을 익히게 된다. 특히, 주일 성찬례는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이라는 사실을 통해 교회가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이루는 법을 가르친다.
「최종 문서」는 ‘성찬의 모임’과 ‘시노드 모임’이 깊이 연결돼 있다고 본다.(27항) 전례가 말씀을 듣고 응답하는 행위이듯, 시노드 역시 말씀을 경청하고 식별해 실천하는 행위다. 따라서 우리 본당 전례가 시노달리타스를 더 잘 표현하려면 어떠해야 하는지 사목자와 신자 공동체는 함께 연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글 _ 엄재중 요셉(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