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클라라를 걱정했습니다. 엄마 소피아와 시어머니 소화 데레사, 배우자 아우구스티노는 물론이고, 두 딸 카타리나와 엘리사벳까지 클라라를 걱정했습니다.
가족의 도움으로 클라라는 일과 육아를 병행했습니다. 그러나 잦은 병치레로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육아에만 전념하면 잘 해낼 줄 알았는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엄마의 역할이었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다섯 살 엘리사벳이 고열로 입원했고, 이어서 아홉 살 카타리나도 같은 증상으로 입원했습니다. 병원에서 딸들을 보살피다 클라라마저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집 근처 아동병원의 3인실에서 세 모녀가 그해 겨울을 났던 것입니다.
병실에도 봄은 찾아왔고, 두 딸은 퇴원했지만 클라라는 여전히 입원 중이었습니다. 홀로 남아 돌봄이 필요한 딸들을 생각했습니다. 새 학년 신학기가 시작되었으니 손길이 절실할 때였습니다. 병실에 누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이 부끄럽고 미안하기만 했습니다.
그리하여 클라라는 온 가족의 걱정거리가 된 것이었습니다. 소피아는 매일 구일기도를 바쳤고, 소화 데레사는 치유의 은사를 구하는 성령기도회 참석을 권했습니다. 아우구스티노는 백방으로 좋은 병원을 물색하느라 분주했으며, 카타리나는 얼른 자라서 의사가 되겠다고 했고, 엘리사벳은 동화 속에서처럼 산삼을 캐 오겠다고 했습니다.
주님 부활 대축일 판공성사를 보기 위해 클라라는 고해소 앞에서 줄을 섰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매우 담담하게 그동안 지은 죄를 고백할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고해실에 들어가자마자 느닷없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울다가 마침내 뜻하지 않은 말이 새어 나왔습니다.
“죽고만 싶습니다, 신부님.”
빗장이 열리자 마음속 깊이 꼭꼭 숨겨두었던 말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습니다. 가족에게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 낱낱이 밝히며 어린 두 딸에게까지 걱정을 끼치는 엄마로 살아야 한다면 그러한 삶을 그만두고 싶다고 호소했습니다.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계시는군요.”
칸막이 너머 신부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랑이라니…, 그늘진 마음에 한 줌 햇살로 다가오는 따뜻한 말이었습니다. 신부님은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가족의 사랑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가족의 사랑을 충분히 받는 일상에서의 실천을 보속으로 주셨습니다.
고해실 밖에서 아우구스티노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클라라에게 작은 선물 상자를 내밀었습니다. 직접 세공해 만든 ‘아모르 파티(운명애)’라고 새겨진 은반지였습니다. 그 은반지는 클라라에게,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기 위해 너무 애쓰지 말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는 메시지로 다가왔습니다.
10년이 더 지났지만, 눈물로 고해성사를 하고 은반지를 선물 받았던 그해 부활절의 장면이 생생합니다. 완벽한 엄마라는 허상에 갇혀 있던 제가 그로부터 해방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니까 걱정하는 거야.” 딸들이 자주 하는 말입니다. 딸들의 잔소리를 들을 때면 “사랑해 줘서 고마워”라고 말합니다. 가족이란 구성원 각자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완전해지는 공동체가 아님을 압니다. 각자의 고유함을 존중하며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곁에 머무르는 관계임을 이제는 압니다.

글 _ 김정은 클라라(가족인문학연구소 공동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