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삶의 마지막이 올 때까지 아껴두고 기다릴 말이 무엇이 있을까
내가 죽고 나서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 돌아다닐 내 말과 나의 모습
그게 바로 유품이자 유언이다
곧 시어머니의 첫 번째 기일이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자주 하셨던 말과 모습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아침에 남편에게 물었다. “어머니가 자주 했던 말 뭐가 생각이 나?” 남편은 1초쯤 생각한 후 바로 답했다. “밥 먹었냐?” 아니면 “사랑한다.” 어머니의 평소 말투와 억양을 그대로 살린 말들이 단박에 입 밖으로 나왔다. 들으면서 생각했다. 이게 바로 유언이구나. 유언이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순간에 남긴 말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우리에게 수시로 했던 말, 그분을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말, 그게 바로 유언이었다.
가키야 미우 작가가 쓴 「시어머니 유품 정리」는 소설이다. 시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는 며느리 이야기다. 주인공 모토코는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하루빨리 집과 유품을 정리하고 싶어한다. 서둘러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월세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집에 가서 보니 살림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며느리로서 무엇을 버릴지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는 것도 매우 큰 일이고, 유품정리 서비스를 이용하자니 그 비용도 만만찮다. 한 사람의 생애를 정리하는 것은 매우 큰 일이었다. 그리고 열면 열수록, 보면 볼수록 이런 물건이 왜 이렇게 많은가 싶게 각종 살림살이가 켜켜이 쌓여있었다. 그렇다. 어머니는 전형적인 맥시멀 리스트(maximalist)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야기가 들린다. 어머니가 남기고 간 유품들은 모두 각각의 이야기를 갖고 있었고 그것들과 함께한 어머니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유품 중에는 살아있는 살진 토끼도 있었고, 어머니 집에 남겨진 음식물과 무거운 돌을 치워주는 비밀 친구도 있었다. 유품정리를 하면서 작가는 제대로, 이제야 비로소, 어머니의 삶 속에 실재했던 이야기들을 만난다. 그때쯤 작가의 친구는 그런 말을 한다. 부모란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게 되는 것 같다고.
우리는 자라면서 그리고 성인으로 살면서 부모가 자기를 잘 모른다고 씁쓸해 한다. 하지만 자식 또한 부모를 모르기는 매한가지다. 어느 순간 부모가 낯설어지는 시점이 우리 모두에게 온다. 그리고 낯설어지는 지점에서 우리는 조금 늦게 서로가 궁금해진다. 작가는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의 (오지랖이 넓은 만큼이나) 다정했던 성품을 알게 되고, 마찬가지로 (어머니만큼이나) 다정한 이웃들의 도움을 받는다.
초반부터 작가는 반복해서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의 반대되는 성정·습관을 비교한다. 갑자기 돌아가시기는 했으나 손댈 수 없게 살림이 많은 시어머니의 집. 반대로 살아계실 적에 하나씩 끝까지 본인 손으로 정리한 친정어머니의 집. 그런데 정갈한, 아무것도 남지 않은 친정어머니의 집에 있다가 작가는 생각한다. 내 어머니는 혹시 환상이 아니었을까.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은 어머니, 본인이 죽고 난 후의 일들을 고려해 싹 다 정리해버린 어머니, 어머니의 배려로 딸은 매우 편했지만 한편 어머니의 어떤 것도 추억할 수 없었다. 좋았던 것도 싫었던 것도 아무것도. 유품이란 많아도, 적어도, 어쨌든 복잡한 이야기와 아쉬움을 남기나 보다.
내 시어머니는 90세 나이에 요양병원에 입소했고, 여러 사정과 이유로 살던 집을 바로 정리했다. 먼저 시누이들이 1차로 살림을 정리했다. 쓸만한 가전제품은 필요한 사람이 나눠 갖고, 쓸만하지는 않아도 꼭 남겨놓고 싶은 물건은 원하는 사람이 가져갔다. 버릴 것들은 그냥 그 자리에 두었다. 그리고 전문 청소업체에 연락했다. 몇 시간 후 몇 장의 사진이 왔다. 깔끔하게 정리된 거실과 방과 화장실 사진. 나는 이용료를 입금했다. 그렇게 쉽게 모든 것이 끝나 버렸다. 아주 쉬웠고 그래서 비현실적이었다.
이후 어머니가 그리울 때마다 나는 왜 그리 그 집을 빨리 정리해버렸을까 후회했다. 가끔 그곳에 들러 가족들끼리 어머니 이야기도 나누고, 명절이면 늘 그랬듯 그 집에 한 번씩 가보면 좋았을 텐데. 만약 집이 남아 있었다면, 방석이나 의자 하나라도 남아 있었다면, 그 공간으로 가서 만져보고 앉아보면서 조금 더 어머니와의 날들을 추억할 수 있었을 텐데. 한데 시간이 더 흐른 지금 드는 생각은 또 다르다. 물건도 공간도 없지만, 어머니가 살면서 우리에게 나눈 말들, 반복해서 전한 메시지, 우리에게는 그게 있었다.
흔히 유언이라고 하면 떠나는 사람이 마지막 순간, 눈 감기 직전에 하는 어떤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언이란 그런 게 아니었다. 우리 모두 아는 것처럼 삶의 마지막 순간은 대체로 경황이 없고 여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언젠가 삶의 마지막이 올 때까지 아껴두고 기다릴 말이랄 게 무엇이 있을까.
죽음에 이르러 할 말이라면 지금 하면 된다. 내가 죽고 나서 내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 돌아다닐 내 말과 나의 모습. 그게 바로 유품이자 유언이다. 그러니 아침 인사를 하듯, 자기 전 잠자리 인사를 하듯 그렇게 수시로 말을 전해야 한다. 그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그것은 남는다. 내가 없는 날들을 위해, 나는 어떤 말과 어떤 모습을 남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