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영성 이야기] (21) 사랑 때문에 포기하지 않는 작은 실천

(가톨릭신문)

얼마 전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고 계산을 하는데, 옆 계산대에서 어느 분이 엄청난 양의 일회용품을 사는 것을 보게 되었다. 최근 코로나19 때문에 그런지 일회용 접시와 컵, 수저, 나무젓가락, 비닐백 등이 엄청난 양이었다. 항상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고, 플라스틱 포장이 과한 제품은 가급적 안 사려고 나름 애쓰고 있었는데, 그 광경을 보고 나는 엄청난 무력감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하는 실천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남들은 저렇게 엄청난 쓰레기들을 만들고 있는데….

원래 나는 자연 속에서 조화로운 삶을 살았던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 같은 인생을 꿈꾸던 청년이었다. 자연이 좋았고, 자연에 해를 덜 입히는 방식으로 살 길 바랐었다. 그러다 내가 그렇게 사는 것이 너무 자족적인 삶이 아닐까, 자연을 즐기는 것을 넘어 자연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세상의 사회 경제 시스템이 환경을 덜 파괴시키는 쪽으로 전환되어 가도록 지원하는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대학원에 진학해 에너지 기후 변화 쪽으로 박사 학위를 따고, 관련 연구소에서 원하던 일을 하게 되었다. 전 세계 환경 문제와 기후 변화 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할 꿈을 가지고서 말이다.

그러나 세상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국가 정책이나 사회시스템이 변하기에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함도 보게 되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꿈을 안고 시작한 공부였는데, 어느덧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한 공부가 되어 버렸다. 세상 구조의 견고함과 위압감에 압도당한 것 같았다.

이후 나를 찾아온 건 무력감과 좌절감이었다. 자연 속에서 살길 바라던 내가 자연을 지켜보겠다고 힘든 공부도 하고 전문성을 키웠지만, 그것으로 세상의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너무 미약했다. 그런 마음이 커지다 보니 내 안에서는 자연을 지키고자 하는 여러 노력들에 대한 회의감과 허무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뀔까, 그런다고 자연을 지킬 수 있을까. 안할 수 없어 작은 실천들을 생활 속에서 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큰 의미 부여나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다.

장보고 들어온 날도 비슷한 마음을 안고 하느님 앞에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안타까움과 속상함, 좌절감, 허무함이 다시금 느껴졌다. 그러다가 아무런 대가 없이 무상으로 받은 이 선물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내가 잠시 잊고 있었다는 것이 다가왔다.

문득 아픈 아이를 대하는 엄마 아빠의 마음이 느껴졌다. 아이가 심각한 병에 걸렸을 때, 엄마 아빠는 절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뭐든 작은 것이라도 하려고 애쓴다. 인간을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마음도 똑같이 간절하실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똑같은 마음으로 인간이 서로를 대하고, 자연도 대하기를 하느님께서 바라실 것 같다.

내가 뭐라고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자연에 대해 희망이 없다고, 그것을 지키려는 실천들이 의미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여전히 햇빛은 빛나고, 바람은 불고, 개미는 기어가고, 나비는 날아가는데, 그 귀함과 고마움을 간직하며 작은 것이라도 뭐든 해야 하지 않을까. 그 효과를 따지면서 재지 말고 말이다.

나 같은 생각을 사람들이 할 줄 아시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찬미받으소서」 (211·212항 참조)에서 말씀하신 것 같다. “작은 일상적 행동으로 피조물 보호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참으로 고결한 일입니다. 이러한 노력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사회에 선을 퍼뜨려 우리가 가늠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결실을 가져옵니다. 그러한 노력은, 때로 눈에 잘 뜨이지 않지만 늘 확산되는 경향이 있는 선을 이 세상에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그러한 행동의 실천으로 우리는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게 됩니다.”




한준 (요셉·한국CLC 교육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