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 중단 시기 논의? “‘돌봄 체계’ 확립 우선”

(가톨릭신문)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밝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서약자가 300만 명을 돌파하면서 연명의료 중단 시기를 기존 ‘임종기’에서 ‘말기’로 앞당기려는 논의가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죽음을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료계의 지적과 함께, 연명의료 시기 논의보다 생애 말기 돌봄 체계 확립이 우선이라는 반대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위원장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와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소장 박은호 그레고리오 신부)는 국민의힘 한지아(베로니카) 국회의원과 공동으로 8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돌봄의 사회: 생애 말기 돌봄의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여의도성모병원 호흡기내과 윤형규(이관 세바스티아노) 교수는 ‘연명의료 결정 이행 시기 말기 확대의 문제점’ 제목의 발제에서 한 사람의 ‘죽음’은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연명의료 시기 논의보다 생애 말기 돌봄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최우선시돼야 하며, 죽음의 과정을 회피하지 않고 삶의 동반자들과 죽음을 맞이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며 “개인과 의료진 모두 임종기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를 중단할 때도 마음에 큰 부담을 갖는데, (중단 시기를) 말기로 앞당긴다면 정신적·사회적 부담이 매우 클 것”이라고 제언했다.


윤 교수는 이어 말기 연명의료 중단 시행 시 사회적 약자들이 죽음을 선택하도록 내몰릴 가능성을 짚었다. 윤 교수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거나 주위에 돌봐줄 사람이 없는 경우 죽음을 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의사나 환자의 바람이나 의사의 판단에 따라 소극적 안락사로 용인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환자의 말기와 임종기 구분이 어렵다는 주장도 비판했다. 윤 교수는 “우리나라 사망 환자의 75%는 호흡기·심장·간 질환 등 비암(非癌)성 질환에 의한 것”이라며 “암성 질환보다 구분은 어렵지만, 임종기 환자는 분명히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경험 있는 의사라면 충분히 판단 가능하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말기 환자의 회복 불가능성이라는 근거 또한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당뇨나 고혈압 등 대부분의 병이 나이가 들수록 회복 불가능하지만 계속 치료하듯, 중증 만성적 병도 나을 수 없다는 이유로 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호스피스는 바로 이런 환자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전했다.


서울대교구 총대리이자 생명윤리자문위원회 위원장 구요비(욥) 주교는 “‘자기결정권’은 생명권보다 앞설 수 없고 우리 사회는 결코 ‘죽음’을 권리로 인정할 수 없다”며 “돌봄을 통해 병자들이 자기 존재의 깊은 의미를 재발견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편, 2024년 6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해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말기 환자에게까지 확대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장관 후보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에서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해 이행 범위를 말기까지 확대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박효주 기자 p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