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하나] 반려동물

(가톨릭신문)

도시에서 정년 퇴임을 한 한 부부가 덩치 큰 반려견과 함께 경상도의 작은 시골 마을로 귀촌하였다. 그런데 이웃 마을의 한 노인이 탐욕에 눈이 멀어 그 반려견을 잡아먹는 사건이 수년 전에 벌어졌다. 이 사건은 인터넷 애견방에서 수십만 동호회 회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가족 같은 반려견을 잡아먹은 사람을 잡아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비난의 글이 폭주했다. 결국 노인은 체포되어 법의 심판을 받았다. 반려견을 향한 사람들의 애정은 단순한 동물 사랑을 넘어, 인간관계에 버금가는 끈끈한 유대감을 보여준다.


본당 사목 시절, 마당에서 기르던 황구 한 마리가 생각난다. 내가 집에 들어설 때마다 꼬리를 힘껏 흔들며 반기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이 너무 들었는데, 사정상 이별하게 되어 참으로 가슴 저린 경험을 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반려동물과 더불어 산다. 우리나라만 해도 약 1546만 명이 반려동물과 함께하며, 장례식장과 봉안당까지 생겨났다. 전 국민의 29.9%, 전체 가구의 26.7%이고 국민 3명 중 1명이 반려견과 함께하고 있다. 나는 가톨릭, 개신교, 불교 빈소가 있는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적지 않게 놀랐다. 그곳에서 나는 인간이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반려동물을 잃고 우울증을 겪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만큼 그들은 우리 삶을 채워주고, 외로운 세상 속에서 깊은 위로가 되어 주는 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위해 수영장, 놀이터, 마트, 장례 서비스까지 아낌없이 투자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잔잔한 위로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가족으로 여기며 정성을 쏟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신앙인으로서 나는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반려견에게 쏟는 정성과 사랑이 우리 곁의 소외된 이웃에게도 흘러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민, 북에서 내려온 북향민, 교도소 수인, 조손가정, 가출 청소년들은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데, 그들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형제자매이다.


하느님은 피조물을 통해 우리에게 사랑을 배우게 하신다. 반려견의 충성심과 무조건적인 사랑은 주님의 사랑을 비추는 작은 거울과 같다. 반려견을 통해 느끼는 수많은 감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을 향한 손길로 이어질 때, 우리 신앙은 풍성한 열매와 보람으로 이어질 것이다. 토빗기의 말씀처럼, “네가 가진 것에서 자선을 베풀어라. 그리고 자선을 베풀 때에는 아까워하지 마라. 누구든 가난한 이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말라”(4,7)는 주님의 명령이 우리의 가슴을 세차게 때린다.


반려견과 함께한 시간이 주는 교훈은 단순한 위로나 즐거움이 아니다. 그것은 그 사랑을 더 큰 사랑으로 나누라는 주님의 초대다. 오늘도 주님 앞에 나아가, 우리가 받은 위로와 애정을 이웃에게 베풀며 살아야 하겠다.



글 _ 이용훈 마티아 주교(수원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