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 생명권 위해… 3개월째 침묵시위하는 엄마들

(가톨릭평화신문)
▲ 3월부터 두달 넘게 낙태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신자들. 25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3개조로 나뉘어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까지 교대로 시위를 한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결정을 뒤집을 순 없지만, 우리가 낙태를 안 할 수는 있습니다.”(이승미 헬레나, 53)

“우리는 물방울입니다. 물방울이 모여 실개천을 이루고, 강물이 되어 바다가 되게 해야지요. 저희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모였습니다.”(박윤경 카타리나, 61)

낙태죄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서울 종로구 북촌로 헌법재판소. 네 명의 여성 신자가 헌재 앞에서 큰 피켓을 들고 묵묵히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피켓에는 ‘재판관님! 당신들도 태아였다’ ‘부모가 자식을 죽여도 되면 자식이 부모를 죽여도 되는 법을 만들어라’ ‘낙태를 허용한 판사들은 사퇴하라’가 쓰여 있다.

피켓을 든 손으로는 묵주알을 굴리고 있다. 네 명의 여성 신자는 하루에 세 번 바뀐다. 하루 12명의 여성 신자들이 3조로 나뉘어 재판관들의 출ㆍ퇴근과 점심시간에 맞춰 낙태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 시위는 3월 12일에 시작해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재판관들의 차종과 차량 번호까지 외울 정도다.

3월부터 낙태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25명 신자들 인연은 38년 전 꽃동네에서 시작됐다. 박희광(베드로, 80, 의정부교구 지축동요한본당)ㆍ이정세(안나, 74)씨 부부 주축으로 꽃동네 피정을 함께 다녔다. 최근 8년 동안 관광버스로 국내 성지 200여 곳을 함께 다니며 신앙심을 키웠다. 부부의 세례명을 따 ‘베드로 안나회’라고도 부른다. 대부분 50~70대 주부로, 평균 3~5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서울에서부터 수원, 구리, 인천, 부천에서 시위하러 헌법재판소까지 온다. 헌법재판소 앞에서 시위하는 시간은 오전 8시 30분부터 저녁 7시까지다. 마지막으로 출근하는 재판관, 가장 늦게 퇴근하는 재판관을 기다렸다가 철수한다.

“처음에는 시위하는 게 떨렸습니다. 주부가 감히 재판관한테 사퇴하라고 하는 게 두려웠죠. 그렇지만 힘을 합쳐서 생명을 살려야 하고, 생명운동에 불을 지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한귀순 스텔라, 55, 인천교구 소사본당)

꽃동네에서 오웅진 신부에게 생명존중에 대한 강론에 마음이 열린 이들은 생명운동을 행동으로 옮기고 싶었고, 자발적으로 낙태 반대 시위에 나섰다. 이들이 시위하며 느끼는 시민들 반응은 다양하다. “돈이 없는데 낙태를 해야 하면 해야지” 하며 화를 내는 시민도 있고, “고맙다”며 악수를 청하는 시민도 있다. 외국인들이 물으면 “코리아 베이비 아웃”이라고 콩글리시로 설명한다.

4월 22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글을 올렸다. “태아는 잉태된 순간부터 귀중한 생명이며, 자기 결정권이라는 명분으로 젊은이들이 죽음과 불행의 길로 몰아가고 있다”고 썼다. 이들은 동의를 얻기 위해 각자 속한 본당의 사목자들에게 관심을 요청했지만, 사목자들은 조심스러워했다. 어느 본당에서는 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을 뽑아 주보 간지로 넣어 나눠줬지만, 낙태법을 발의한 정당을 옹호하는 신자들 항의로 알리는 일조차 무산됐다.

이승미(헬레나, 53, 서울 정릉4동본당)씨는 “나약하고 죄 없는 태아를 죽이는 것은 명백한 살인이며, 생명은 인간 본연의 권리”라면서 “개인 시간을 쪼개서 시위하는 데 평신도로서 힘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토로했다.

김경희(세라피나, 56, 인천교구 중3동본당)씨는 “신자들부터, 본당에서부터 낙태하지 않도록 생명운동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들은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결정에 대한 사제들 강론도 듣기 쉽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이제는 헌법재판소 앞에서 시위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이들도 안다. 법 개정의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5개월째 멈춰있는 국회가 정상화되면 국회로 갈 계획이다. 낙태 반대 시위에 동참하고 싶은 이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헌법재판소(오전 8시 30분~10시) 앞으로 가면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