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불평등은 정해진 운명 아냐”… 약탈적 세계 금융제도 비판

(가톨릭평화신문)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상은 부유하지만, 우리 주변에 가난한 이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가난한 이들을 향한 실질적 관심과 제도적 이행을 강력히 촉구했다.

교황은 5일 바티칸에서 ‘새로운 형태의 연대’를 주제로 교황청 사회과학학술원이 개최한 국제 모임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모임에는 프랑스,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5개국 재무장관들과 국제통화기금(IMF) 이사, 노벨 평화상 수상자 등 세계 금융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교황은 세계의 영향력 있는 재무 전문가들을 향해 “불평등은 운명지어진 것이 아니다”라며 “특히 5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극심한 가난으로 올해 또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들을 위해서라도 세계가 행동에 나서는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황은 통계 자료들을 철저히 인용하며 국제사회 빈곤 실태를 낱낱이 전했다. 아울러 이 같은 경제 불평등이 가난과 무고한 죽음의 고리를 형성해 더욱 암울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교황은 “올해 전 세계인의 1인당 평균 소득이 1만 2000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도 있지만, 여전히 수억 명에 이르는 사람들은 극심한 빈곤 속에 식량, 주택, 의료, 교육, 전기, 물, 위생 서비스 부족을 겪고 있다”며 “우리는 이 같은 부정적 상황을 바꾸려는 의지와 결단력 부족에 직면해 있으며, 이는 주로 우선순위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세계 통계 자료를 인용해 “올해 5세 미만 아동 중 약 500만 명이 빈곤으로 사망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며 “또 다른 2억 6000만 명의 아동은 자원 부족과 전쟁, 이주 등으로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될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 “수백만에 이르는 사람들은 인신매매와 강제 노동, 매춘, 장기 매매와 같은 ‘노예의 희생자’로 전락할 처지”라며 “그들은 권리와 보장이 없기 때문에 가족과 이웃 간의 우애도 누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교황은 만약 자산 규모가 수조 달러에 달하는 세계 50대 부자들이 이처럼 가난한 이들을 향한 연대를 실천한다면, 매년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교황은 “오늘날 부의 중심에서 극빈 현상이 지속해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역사상 가장 큰 빈곤층을 양산하도록 모두가 방치했기 때문”이라며 “세금 정책과 박애주의 정책 등을 통해 부유한 이들 50명이 나서서 가난한 아이들의 의료와 교육을 지원하면, 매년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부유한 이들이 적극 나설 것을 구체적으로 촉구했다.

교황은 이 모든 경제 불평등의 상황이 ‘무관심의 세계화’, ‘돈과 탐욕, 투기의 우상화’가 불러온 죄의 구조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국제 사회는 부자 감세를 반복하고, 투자와 발전을 명목으로 수차례 이를 정당화하고 있다”며 “민간과 기업을 위해 조세 피난처를 허용하는 등 세계 최대 기업들 가운데 일부는 부패와 집권 정파와 유착하는 죄의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비난했다. 교황이 지구촌에 만연된 빈곤의 사태를 쥐락펴락하는 국제사회의 정치ㆍ경제 지배 구조와 약탈적 금융제도를 종합적으로 나열해 비판한 것이다.

교황은 “우리는 무엇을, 누구를 우선순위에 둘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면서 “우리는 선택에 따라 사회적 불평등과 폭력이 심화될 수도, 사회경제 시스템을 인간화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회의에 함께한 국제통화기금 크리스탈리나 조지바 전무 이사 등 참석자들은 “몇몇 사람의 손에 재화가 집중되고 경제 불균형이 심화되는 것은 단순한 경제 법칙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정책과 법의 결과”라며 “잘못된 선택을 버리고, 대체 경제 체제와 대안적 세계화라는 새로운 길을 가야 할 때”라며 교황의 뜻과 함께할 의지를 내비쳤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