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피살당한 엘살바도르 그란데 신부 시복 확정

(가톨릭평화신문)
▲ 엘살바도르 한 마을에 그려져 있는 벽화. 왼쪽 위가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이고 그 옆이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다. 아래에는 가난한 농부들과 소외된 이웃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CNS】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싸우다 피살당한 엘살바도르 루틸리오 그란데(예수회, 1928~1977) 신부의 시복이 확정됐다.

교황청은 2월 22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란데 신부와 그란데 신부와 함께 숨진 신자 두 명의 시복을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인 시복식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그란데 신부는 1977년 3월 12일 성 요셉 축일(3월 19일)을 앞두고 9일 기도를 하러 차를 몰고 가던 중 사고를 당했다. 군인들은 그란데 신부가 모는 차량에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차에 함께 타고 있던 마누엘 솔로르자노(당시 72세)씨와 넬슨 루틸리오 레무스(16)군도 숨졌다.

그란데 신부는 성 오스카 로메로(1917~1980, 2018년 시성) 대주교의 오랜 친구로도 잘 알려졌다. 교회의 사회 참여와 해방신학을 비판하며 군사 정권의 만행에 눈을 감았던 로메로 대주교가 변하게 된 계기는 그란데 신부의 죽음이었다. 이후 로메로 대주교는 “그란데 신부가 자신이 한 일 때문에 죽었다면 나 역시 같은 길을 가겠다”고 선언하며 군사 정권의 폭정을 고발하는 데 앞장섰다.

그란데 신부는 스페인과 벨기에서 유학한 뒤 고국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하고자 엘살바도르로 돌아왔다. 글을 모르는 소작농들에게 성경으로 글을 가르쳤고, 가난한 이들이 착취와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왔다. 살해 위협도 아랑곳하지 않고 폭정에 맞선 그는 군사 정부에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지만, 가난한 이들에겐 희망을 주는 스승이자 아버지였다.

그란데 신부의 시복 소식에 엘살바도르 교회는 축제 분위기다. 엘살바도르 찰라테낭고교구장 오스왈도 에스코바르 아귈라 주교는 “그란데 신부의 시복은 박해받던 남미 교회와 엘살바도르 교회를 인정받은 것과 마찬가지”라며 “가난한 이들과 폭력을 경험했던 모든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소식이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