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 교황 주일 삼종기도 ‘생중계’

(가톨릭평화신문)
▲ 프란치스코 교황이 8일 주일 삼종기도와 훈화를 스크린을 통해 하고 있는 모습을 순례자들이 베드로 광장에 서서 지켜보고 있다. 교황이 바티칸 부재 중이 아닌데도 주일 삼종기도가 온라인 중계로 대체된 것은 1954년 주일 삼종기도가 시작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CNS】



세계 교회도 ‘코로나19 비상’에 걸렸다. 특히 확진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는 이탈리아 교회는 8일부터 4월 3일까지 전국 교구의 회중 미사와 모임을 중단키로 했다. 이탈리아 보건 당국이 장례 미사를 포함한 모든 종교의식을 중단해줄 것을 공식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로마교구는 당일 긴급 지침을 통해 “4월 3일까지 모든 미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중국, 한국,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교회가 지난 2월 말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회중 미사를 중단하고 온라인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중에 유럽 교회도 ‘도미노 현상’처럼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밀라노와 베네치아, 볼로냐교구 등 이탈리아 북부 지역 교구들은 지난주 확진자가 속출함에 따라 성당 문을 닫고 일제히 미사를 중단했다. 일부 성당들에선 주일인 8일까지 신자 간 1m 거리 두기를 지키며 미사를 봉헌했지만, 이날을 기점으로 이탈리아 내 대부분 교회가 미사를 중단했다. 교황청을 비롯해 이탈리아 교회 전체가 사순 시기 내내 회중 미사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6일 바티칸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1명 발생하면서 교황청은 업무를 일시 중단하고 방역을 하는 상황까지 맞았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8일 주일 삼종기도와 훈화를 인터넷 생중계로 전환했다. 해외 사목방문이나 건강상 사유 외에 교황이 사도궁 발코니 연설이 아닌 인터넷 중계로 삼종기도와 연설을 한 것은 1954년 이후 처음이다. 당분간 교황의 일반 대중 알현과 공식 행사 일정도 모두 취소됐다. 앞으로 교황 삼종기도도 계속 실시간 중계로 이뤄질 예정이다. 교황청 고위 성직자들이 참가하는 사순 피정도 온라인으로 대체하는 것으로 방식을 바꾸는 등 코로나19에 대처하고 있다.

아울러 이탈리아 내 박물관과 유적지, 학교들이 모두 문을 닫는 조치를 취함에 따라, 교황청도 바티칸박물관을 4월 3일까지 휴관에 들어갔다. 바티칸은 순례자들의 입장을 막고 있진 않지만, 지난 평일 이후 순례자가 현저히 줄어 바티칸 곳곳은 유례없이 텅 빈 모습이었다.

▲ 이탈리아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퍼진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성 베드로 대성당 성수대가 비워진 모습. 【CNS】


교황의 주일 삼종기도 시간 때에도 마스크를 착용한 소수의 신자만 듬성듬성 광장에 서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 교황을 만났다. 교황은 잠시 나와 손을 흔든 뒤 강복을 전하고 퇴장했다. 미사를 중단한 성베드로 대성전도 한산해졌다. 극히 적은 수의 순례자들만 대성전을 방문해 잠시 기도를 하고 발길을 돌리고 있으며, 성수대는 일찌감치 비워졌다. 베드로 사도의 무덤이 있는 대성전 지하는 폐쇄했다. 관광객이 붐비는 로마 콜로세움과 밀라노 두오모대성당을 비롯한 명소들도 인적 드문 곳이 돼버렸다. 급기야 이탈리아 정부는 10일 전 국민 ‘자택기거’ 조치를 발표했다.

교황은 주일 연설을 통해 “현재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이들과 그들을 돌보는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며 “믿음의 힘과 희망의 확실성, 자선의 열정으로 모두가 어려운 순간을 극복하도록 형제 주교들과 함께 격려하겠다”고 전했다.

한 해 수백만 명이 찾는 프랑스 최대 성지인 루르드 성모성지도 침수 예식을 잠정 중단했다. 성지 측은 “순례자들의 방문은 환영하지만, 예방을 위해 추후 통지가 있을 때까지 샘을 당분간 폐쇄한다”고 밝혔다.

한편, 5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확진자가 발생함에 따라, 이스라엘 교회는 베들레헴 주님탄생성당을 비롯한 이 지역 성당들을 모두 폐쇄했다. 단체 순례자들을 받지 않는 대신 개인 기도를 하는 신자들에게만 서로 1m 이상 거리 유지를 지키도록 안내하며 개방하고 있다.

3억 3천만 명 인구 중 가톨릭 신자가 약 6000만 명에 이르는 미국 교회도 코로나19 예방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주교회의는 각 교구가 재량껏 미사 중 코로나19 예방에 심혈을 기울일 것을 지시하면서도 이번 사태로 신자들이 공포심을 갖지 않고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예의주시하며 대응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 내 가톨릭계 초중고교들은 학생들이 모이는 야외 활동들을 모두 취소했다. 가톨릭계 대학들은 이탈리아 등 유럽과 연계한 유학 프로그램을 대부분 취소하고 있다. 학교를 폐쇄한 곳은 아직 없지만, 교내와 통학버스에 손 세정제를 두고, 방역에 힘을 쏟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스위스 교회들도 미사 중 접촉을 피하고, 손으로 성체를 모시도록 하는 등 예방을 독려하고 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